교육

위대한 교육자(손근배선생님) 핵분열하는 현장

benny kim 2021. 6. 24. 01:32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신기동 형제님이 주신 말씀 주제로는 봉사의 진정한 의미였습니다 이 교회는 직업적인 성직자 없이 모든 성도의 봉사로 운영되고 있는 평신도 교회입니다. 본인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침례를 받자마자 주일학교 교사에서부터 지부장 감독 스테이크 회장으로 부름을 받고 봉사해 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직분으로 봉사하면서 어떤 부름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사직분였습니다. 반세기 전의 본인 가르침을 아직도 잊지 않고 그때 감독님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매일 또는 카톡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과 함께한 가족사진을 보내오면서 감독님이 말씀하신 핵분열입니다. 도 했습니다

무선 이야기냐 하면 교사자질 향상 프로그램과 공과 고수관리를 강의하면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교리나 지식과 진리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실천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 목적이라야 한다는 말씀이고

 

이로 인하여 180도로 삶의 변화가 올 때 이 가르침은 핵분열처럼 번져 회원은 물론 후손들에게 전해지면서 가족 사회와 국가를 부흥하게 만든다는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은 것이 본인의 운명을 바꾸어준 손근배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상계와도 출신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아직도 손근배 선생님을 기억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손근배 선생님은 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주 옛날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가을이었습니다

산술 시간이었는데 숙제 문제를 2-1/3+4-3/4= 흑판에 적어놓으시고 풀 수 있는 사람 풀어보라 했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은 김 병희! 나와서 풀어봐요!

물론 선생님은 내가 그 문제들을 풀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내가 용기가 없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지명을 하신 것이다.

순간 학생들은 낄낄거리며 측은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나가서 한 문제를 풀었다.

선생님은 다시 다그쳤습니다

다른 문제도 풀 수 있는 데까지 풀어 봐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덜덜 떨면서 나머지 4문제도 풀고는 고개를 바로 들지도 못하고 푹 숙인 체 자리로 돌아왔다.

 

당시 한글도 모르고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였는데 손 선생님의 배려로 개인 지도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학생들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고 입을 딱 벌릴 수 박에--

 

선생님은 갑자기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학생들 다들 일어나서 저쪽 창밖을 내다봐요!

갑자기 소리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학생들은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모두 창밖을 내다보았다.

선생님!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무것도 없다고? 그럴 테지!

좀 더 멀리 벌판을 보란 말이야!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느냐?

! 저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 말임니꺼(말입니까)?

그래요! 그 벼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봐요!

지금 노랗게 잘 익은 것 같심더(같습니다)!

그래 지금 알알이 가득 차 잘 익었지-- 그런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있습니다)!.

한 학생이 선생님의 하고자 하는 말씀을 알았다는 듯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2개월 전만 해도 저 벼는 고개를 바싹 들고 미풍에도 간들거리며 잘난 ''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속이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금은 어떠하냐? 속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머리를 푹 숙이고 있지 않으냐?

너희들은 2개월 전의 텅텅 비었으면서도 잘난 '' 하고 있었든 벼 이삭들이었어!

그런데 너희들이 바보라 항상 놀려대던 김 병희 는 어떠냐?

 

너희들 아무도 풀지 못한 이 문제들을 다 풀고도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느냐?

 

김병희는 속이 가득 차 있었으면서도 너희들이 놀려대는 대로 그저 바보처럼 행동했을 뿐인데 너희들은 그것도 모르고 바보라 부르고 있었던 거야? 그것은 바보였기 때문이 아니고 겸손했기 때문이야!

이러한 일이 있었던 후부터 초등학교 1학년부터 46개월간 따라붙어 나를 괴롭히던 바보라는 별명은 떨어져 나가게 되었고 나의 인생행로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바뀌게 된 것인데--

그것은 순전히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새로 부임해 오신 손 건배 선생님 덕분이었고

내 인생 여정에서 이분만큼 영향을 준 분은 없었다.

1944년 광복 1년 전에 경남 김해군 주촌면 주촌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다음 해 김해 읍 칠산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는데 전학서류를 주던 시게미쓰라는 일본 선생이 갑자기

아나 다와 바가 다로 닫다” (너는 바보였어!) 라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는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금방 잊어버렸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새로 전학 온 학교의 담임선생이었던 장** 선생은 나의 학적부를 보고 있더니

갑자기 너 바보였었군! 하며 나가 보라 했다.

 

바보! 참으로 나에게는 무서운 단어였고

하마터면 나의 전 인생을 망쳐 놓을 뻔한 저주의 말이었는데 나의 담임 선생이었던 장** 선생은 나의 이름 대신 항상 바보라 불러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장**선생이 5학년 1학기까지 계속 담임을 맡았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바보라는 최면에 걸려 그만 정말 바보가 되어 버렸고

실제로 그때까지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구구단도 외우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는데 당시의 선생님(?)이었던 이분은 이런 사실을 깨닫기나 하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주위에 친구도 없고 학교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긋지긋하든 장**선생 대신

새로 부임해오신 손근배 선생님이 새로운 담임이 되셨는데 참으로 이분을 만난 것은 나에게는 정말 하늘의 축복이었다.

 

 

이분이 담임을 맡자 당시 82명의 학생을 매일 매일 순번을 정해 개인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드디어 그 두려운 나의 차례가 된 것이다.

나의 형편없는 학적부의 기록을 보고 뭐라 하실까?

두려운 마음으로 참새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혼자 계시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의 학적부를 한참 보고 계시던 선생님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시더니 김 병희! 너는 친구도 없이 참 외로웠겠구나!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부터 선생님이 너의 친구가 되어 줄 테니까?”

하시며 나를 포옹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마나 감격했던지 선생님의 품에서 한참 동안 어린애처럼 울었다.

얼마 후 내가 진정되는 것을 본 선생님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김병희!

너는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

사실 내가 낙제점을 면하고 있는 것은 미술밖에 없었고 그림에 관한 한 나보다 더 잘하는 학생은 없었는데 손 선생님은 나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과목은 일체 언급 하지 않고 오직 여러 가지 그림과 그림자를 그려보게 하셨는데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실은 지능 (IQ)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주문대로 원뿔 원기둥 그리고 서로 겹친 상태에서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를 그려나갔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와!

하시더니 환한 얼굴을 하시며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감격해 하셨다

김 병희! 너는 결코 바보가 아니야! 너는 천재야! 천재란 말이야!

너는 분명히 일등도 할 수 있어!

너는 오직 공부하고 있지 않을 뿐이야.!

이 그림을 이렇게 정확히 그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하시며 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것 같았고 나도 생전 처음으로 과분한 칭찬을 받고 정말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당시 선생님은 가족들은 부산에 있고 혼자 학교 사택에서 자취하고 계셨는데

마침 우리 집은 학교와 가깝게 있어 선생님은 매일 저녁 나를 사택으로 부르셨고

나의 개인 가정교사가 되어 한글부터 가르쳐 주셨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었던지 그렇게 어려워 보이던 한글을 일주일도 안 가서 완전히 익히고 나니

마치 심 봉사가 눈을 뜬 것처럼 새로운 세상 무릉도원이 보여

무엇이든지 닥치는 데로 읽고 싶고 쓰고 싶어졌다.

그 후 2개월 만에 모든 학과를 진도에 따라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습으로 내어 준 숙제까지 미리 다 알고 있는 판이였으니 학교 가는 것 공부 시간이 기다려지기만 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학생들은

내가 갑자기 나가서 자기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문제들을 모조리 풀어버렸으니

모두 놀라고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던 바보라는 별명을 의도적으로 때어 주신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의 주위에도 하나둘 친한 친구가 생기게 되었고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글을 많이 읽고 쓰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책 살 돈이 없어 십 리나 떨어져 있는

오복당이라는 책방을 들락거리면서

소설책 세계문학 전집 등을 빌려 닥치는 대로 읽게 되어

일생 살아가는 데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었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갑자기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아침에 잠깐 들려 출석만 힘없이 점검하시고는 모두 자습만 하라 하시고

온종일 오시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선생님의 기숙사에 들어가 보았더니

쌀도 반찬도 먹을 것이라고는 물통에 있는 물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며칠을 물만 마시고 버텨오신 것이 분명하였다.

 

교무실에 달려가 선생님을 찾았지만, 거기에도 선생님은 계시지 않아 다른 선생님에게 우리 선생님의 사택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더니 벌써 3달째 월급을 못 받고 있으니 그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길로 우리들은 쌀을 구하기 위해 여유가 좀 있는 집을 방문해 선생님의 딱한 사정을 말하고 쌀이든 보리든 외상으로 사게 해달라고했다.

 

당시 참으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던 시골 인심은 우리 모두의 어린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하였고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 어른들에게는 하찮은 일로 무시당할 때

속상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결국 외상으로 쌀을 사겠다는 생각은 포기하고

대신 우리들 모두 하루를 굶기로 하고 굶은 만큼의 쌀을 가져오기로

결의하였더니

다음날로 두 가마의 쌀과 고추 마늘 호박 채소가 모였는데

우리는 이 일을 선생님 몰래 진행하였고

학교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가 밥을 짓고

여러 가지 요리를 정성껏 준비하여 아침상을 차렸다

그리고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선생님 예! 진지 자시이소(진지 잡수세요)! 하니

선생님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자습하고 있다 말고 우르르 일어나

선생님! 가입시더! 하면서 납치하다시피 선생님을 모시고 기숙사로 갔다.

그곳에 성정 것 준비된 밥상이 차려진 것을 보신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도 엄숙한 말로 이것이 어찌 된 것이냐?

하시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물으셨다.

당시 반장이었던 김정호 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이소(마세요)!

우리는 절대로 나쁜 짓 하지 않았습니더(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을 굶으시는데 우리가 하루쯤 못 굶겠습니까(굶겠습니까)!

오늘 우리 하루 굶기로 하고 모은 쌀을 가지고 지은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맛있게 드시소(드십시오) !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감정을 억제하는 듯 말없이 한참을 서 계시다가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든 학생이 선생님! 하고

서로 엉켜 울며 한 덩어리가 되었으니 참으로 사제 간의 깊은 신뢰와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가 지난 후 선생님은

당시로는 대단히 비싼 가죽으로 된 배구공과 축구공을 들고 들어와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나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고 선생님을 생각해주는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여러분의 선행이 상부에 보고되 그동안 밀려 있던 봉급을

모든 선생님이 다 받게 되었고

앞으로 선생님들의 봉급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때 지불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하시며 여러 선생님이 여러분들에 감사한다고 말씀하셨다.

 

형제자매 여러분 손근배 선생님의 한 토막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교사로 봉사하는 참뜻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행동목표를 정하여 가르치다 보면 사람의 운명을 180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봉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손근배 선생님을 검색해보시면 다음 브로그의 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란 글이 뜰 것입니다 16년 전에 본인이 올린 글인데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본인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찾아 읽어보았는데 제일 마지막에는 눈물 나게 반가운 분 또 하나의 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아드님이 올린 글이었습니다

 

댓글 손은상

알래스카(김병희 블로그 닉네임 )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느낌입니다.

오늘 갑자기, 돌아가신 지 30여 년이 된 아버님이 생각이 났었지요.

그리고 또 아무 생각 없이 검색창에 아버님 함자를 쳐 봤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손근배 선생님"이란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 분이 계신다는 것을....

진주사범학교, 부산 부민초등학교, 대신초등학교, 서예 대가, 오르간연주자 등등....

제 눈을 의심했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제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알래스카 선생님!

방명록에 긴 이야기는 올리지 못함을 헤아려주시고, 선생님께서 기억하신 손근배 선생님은 19846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합천 해인사 아래 첫 동네 저희 선산에 잠들어 계십니다.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을 모아서 아버님 영전에 받치겠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