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7전8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benny kim 2018. 9. 25. 17:52

-인생여정-
1960년 고학하다 시피 대학을 졸업하고 4.19, 5.16혁명을 거처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 크고 작은 산맥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런대로 잘 극복해왔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힘으로 살아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당시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일자리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요 돈 한 푼 없이 자립하여 살아간다는 것 또한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어머니 모시고 계시는 형님댁에 언제까지나 식객으로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고 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래도 대학 시절 4년간 과대표를 하면서 쌓아둔 신용과 친분 덕분으로 여유가 있는 동문으로부터 종잣돈을 빌릴 수가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서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당시에는 전기도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멀리 도봉동 시골 단칸방이 불어 있고 싸게 나온 창고 하나를 빌려 목재 염색 공장을... 차렷다.
공대 화공과 출신이라 여러 가지 생산 아이템이 있었지만,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염색가공이었다. 당시 일반 섬유 염색공장은 많이 있었지만, 목재 염색은 처음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 목재착색 공장을 하기로 했다. 공장이라야 화공약품을 풀어 무늬목을 담가두는 나무판자로 만든 착색 조가 전부였다. 여기에다 커다란 짐칸이 달린 자전거 한 대가 재산목록 제1호로 등록해 놓고 새벽 3시에 일어나 당시 미국의 무상원조로 싸게 나오는 밀가루를 사다가 수제비 국으로 배를 채워놓고 먼동이 터기도 전에 멀리 마포까지 가서 무지 무늬목을 사다가 염색을 하고 다시 각가지 착색된 무늬목을 자전거에 싣고 가구공장이 있는 골목을 다니며 직접 팔고 다녔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한 많은 미아리고개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무거운 물건 실은 자전거를 끌고 미아리 고개를 넘나들 때는 한겨울에도 땀으로 목욕을 했다. 원료 구입처 마포에서 도봉동까지 자전거로 오가는 것 상상해보면 알 것이다
당시 가구공장에서 색깔을 낸다는 것이 황토를 발라 말린 후 수세미로 다시 닦아내면서 나오는 황토색 갈이 전부였는데 새롭고 다양한 색상의 무늬목이 인기상품이 되어 잘 팔려나갔지만, 무지무지 고생했던 때였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어도 미래의 서광이 보이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죽기 살기로 일을 한 것 같다
호사다마라 순풍에 돛단 듯 잘나가던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고객의 요구로 마호가니 색상의 무늬목을 생산해서 공급했는데 이게 고만 탈이 나고 말았다.

무늬목 착색을 화공약품으로 착색하게 하므로 산도(PH) 에 민감하게 반응

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고 가구에 사용하는 폴리에스터 수지 성분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색상이 변하여 가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가구공장 사장에게 멱살을 잡혀 못쓰게 된 가구 앞에 대려다 놓고 한 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봐 이 가구 어찌할 거야 다 버려 놓지 않았느냐 이런 엉터리 물건을 팔아먹고 회사 망하는 꼴 보고 싶은 거야 당장 변상해 하는 호통 소리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제비국 으로 배를 채우고 고된 노동에서 수면 부족 영양실조로 일시적인 저혈압으로 슬어진 것이다. 몇 분 후 다시 일어나는 나를 보고 가구공 장 사장은 조금 미안했던지 많이 누그러지면서 도되 체 어쩌자고 이런 물건을 팔아 골탕을 먹이느냐고 했다 나는 정색으로 대답했다. 사장님 나도 정말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누가 이런 물건을 팔고 다니겠습니까 내가 책임지고 변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반드시 나를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제에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뿐이니까요
그날 이후 다시 멱살을 잡힐 각오를 하고 마호가니 무늬목을 판 공장마다 방문해서 사용하지 않은 제품은 회수하고 피해보상을 하고 나니 그동안 제법 늘어난 재고도 몽땅 다 다 날아가 버리고 다시 처음의 제자리로 돌아 갖지만, 다시 일어날 힘까지 빠져버린 것이다
사람을 배가 고파봐야 한다. 배가 고파지니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용기와 힘은 용솟음치고 있었다.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어떻게 나를 믿고 종잣돈을 마련해준 친구들에 대한 배신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제품을 파는 것보다 변색하지 않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작은 실험실을 만들어놓고 실험을 거듭했다. 무늬목 위에 상도로 쓰는 포리애스트수지 락카 등으로 직접 실험을 거친 후 안전이 확인된 제품만 가지고 우선 피해를 준 가구공장만을 찾았다. 그리고 전번의 실수로 피해를 준 데 대한 적은 성의로 가져왔니 사용해 보시라며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몇 개월 지난 후에 다시 찾았더니 모두 반가워하며 왜 이제야 오느냐 하면 반겨주었다 내기 샘플로 준 제품으로 만든 가구만 속속 팔리고 있었는데도 당시 전화도 없는 나의 연락처도 모르는 처지라 내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신용은 다시 회복되었고 착색 무늬목을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직원도 채용하고 제법 회사 규모를 갖추어 위기의 수령에서 완전히 삐져나와 중소기업의 기반을 구축한 이면에는 실패의 교훈에서 얻은 것이었다. 요즘도 젊은이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3D고 자존심 다 버리고 7전 8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을 잊지 말고 무슨 일이나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막다른 골목에 가면 길은 보이게 되고 열리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