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미아리고개와 아리랑고개는 이별의 형제 고개다

benny kim 2018. 6. 14. 10:57

미아리고개와 아리랑고개는 이별의 형제 고개다

아리랑 고개와 미아리고개의 위치는 현재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1950년대의 위치로는 돈암동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의정부 쪽과 정릉 쪽으로 갈라지는 고개인데 의정부 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미아리 고개 정릉 쪽으로 갈라지는 고개를 아리랑고개라 했다

원래 함께 가다 해어진 고개이기도 한 것인데 그래 그런지 얽힌 사연을 보면 해어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 헤어진 이별의 고개이기도 한 것이다

우선 미아리 고개를 옛날에는 되놈의 고개라고 하기도 했는데 얽힌 유래부터 한번 살펴보자

1636년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로 나와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하면서 큰절을 세 번 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땅에 3번씩 부닥쳐야 (삼배 구곡 두례) 했는데 이를 삼전도의 굴욕(三田渡屈辱)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후 인조는 청에 한국의 아녀자 20만 명을 조공으로 바쳐야 했고 청나라 군병들이 조선의 아녀자들을 보이는 데로 잡아서 조기, 동태 역 듯 철삿줄에 줄줄이 꾸러미로 역어 북으로 끌고 간 길목이 바로 미아리고개여서 한 많은 되놈의 고개로 불리기도 한 고개가 바로 미아리고개이다.

그 후 일본식민 시대에 생긴 공동묘지 제도에 따라 미아리 고개 넘어서 수유리 일대에 공동묘지가 생겼는데 영원한 이별의 길 저승길로 간다는 곡소리가 그치지 않아 눈물고개라고도 했다 6.25 전쟁 이후 단장의 미아리고개에서 나오는 가사처럼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메일 때

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로도 유명하지만, 당시의 납북인사 가족의 가슴에는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그럼 미아리 형제 고개 아리랑 고개는 이별과 무선 상관이 있을까 우리 민요 아리랑의 의미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마음 아리고 쓰리게 한 사무치게 그리운 님()’

으로 해석한 것이 정설이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사랑하다가 커 가면서 상노 신분으로 서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랑()(신랑 新郞)님이 신행길 말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 아리고 쓰린 (아리랑 쓰리랑) 아녀자의 마음을 노래한 것인데 소월의 시 진달래 가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처럼 이별의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으면서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했고 아리랑에서는 10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노래한 것인데 정말 발병이 나라는 뜻이 아니고 당장 달려가서 붙잡고 싶은 가슴 아프고 쓰린 마음을 표출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한 이별의 노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아리랑 고개와 미아리 고개는 한이 많은 이별의 고개이고 형제 고개인 것이다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의 비결- 관심과 무관심  (0) 2019.09.08
7전8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0) 2018.09.25
매실효소 알고 먹자   (0) 2016.10.10
철창에 갇혀 있는 아이들 구하기   (0) 2016.03.13
때쓰기 정치권 육아교육   (0) 201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