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살맛 나는 이야기

한국의 녹색 혁명-이 사진이 의미하는 것

benny kim 2017. 6. 23. 12:46

한국의 녹색 혁명-이 사진이 의미하는 것





녹색혁명 해방 이후 대한민국 민둥산을 푸르게 만든 분은 박태준 씨의 묘안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박태준 씨가 5.16군사혁명이후 상공담장 최고 위원으로 있으면서 박정희 최고위원 의장을 설득하여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산림녹화 사업을 위해 국민 땔감부터 해결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사업이고 이를 위해 무연탄 개발을 포함 시켜야 한다고 주장 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산림녹화사업은 국민 땔감을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우선 무진장으로 매장되어 있는 무연탄을 개발하여 국민 땔감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였던 것이고 이러한 제안이 박정희 의장의 무름을 치게 하였다

박 의장은 이 사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무연탄개발에 착수 당시 유명무실한 국립광물 지질연구소 직원 25명 정원을 220명으로 대폭 늘리고 연간 예산도 2,000만 원에서 15배로 늘려 3억 원으로 늘리도록 관계 장관에게 지시했다. 뿐만이 아니라 당시 한 장 한 장 손으로 찍어내고 있었던 국민 연료 19공탄 22공탄 등 대량생산을 위한 자동생산 기계 개발을 지원하고 전국 방방곡곡 공급하고 보니 더는 땔감 구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도 없어지고 오늘날과 같은 푸르른 산에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댐이 건설되고 수력발전으로 전력을 공습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럼 박태준 씨로 하여금 이러한 묘안을 제공하게 자문하신 분은 누구였을까

필자는 아전인수 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첨부한 사진 한 장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진은 1960년도 육군사관학교 주최 전국 대학생 학술토론대회 반대 토론 부분에서 필자가 우승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당시 이 토론 대회는 매년 전국 대학에서 예선을 거처 올라온 대표들이 23일 동안 육군사관학교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이어 젖는 데 주제 발표자가 임의로 선택된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한 반대 토론을 전개하면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게 한 것인데 당시 대학가 최대 이벤트였던 것이다

필자가 우승하게 된 반대 토론은

주제 발표자 공군사관생도가 발표한 한국의 미래 전력수요량 확보하기 위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란 주제였는데 요약하면 한국에서는 전력생산은 현재 화력 발전에만 의존하고 있지만, 화력발전 연료인 유연탄은 수입해야 하고 산야의 황폐화로 수자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수력발전 또한 불가능하므로 향후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한 필자의 반대 토론주제는 "원자력 발전은 과대망상이고 그 대안은 무연탄개발"이었다

현시점(1960)에서 실험용 원자로 하나 제공하려 하는 선진국이 없는 마당에 원자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핵 폐기물이 나오는 원자력발전소의 기술 제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앞으로 10~20년 이후나 고려 대상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과대망상에 불과 한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서 무진장으로 매장되어 있는 무연탄을 개발하면 된다는 요지였다

무연탄 개발과 동시에 화력발전 설계를 미분탄 연소 법으로 바꾸어 유연탄 대체 연로로 상용하면 되고, 전력난 해소뿐만 아니라 산림녹화, 수자원 확보, 국민 땔감 해결, 댐을 건설하여 수력발전을 하게하고, 식수와 농업용수확보로 전천후 농업을 할 수 있게 하는 15조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바로 무연탄 개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

당시 심사위원장의 반대 토론 부분 심사평은 5명의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우승자를 선정한 이유는 무연탄개발 하나로 국민 땔감문제 해결 산림녹화 사업뿐만 아니라 수자원확보로 수력발전을 가능하게 하고 댐을 건설하여 전천후 농업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정부에서 충분히 검토할 가치 있는 국책 사업을 제시해준 것이란 것에 모든 심사위원이 이구동성으로 공감해주었다고 평했다

본 대회가 있었던 1960년은 5.16군사혁명 바로 전해이고 삼군사관학교장뿐만 아니라 군장성급들이 대거 참석해 있었고 당시 박태준 씨가 직접 참석하였는지는 알 수 없이만 군사혁명 이후 직간접적으로 이때의 사정을 박태준 씨에게 전달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박대준 최고 위원이 박정희 의장에게 건의한 내용이 바로 본인이 주장한 내용 그대로 이였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5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필자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녹색혁명의 성공사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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