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람사는 이야기

60년의 우정

benny kim 2015. 1. 8. 13:37

60년의 우정

황군, 신군 그리고 나 이렇게 고교 삼총사의 우정은 지금까지 60,

여년을 이어오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서로 간의 연락을

계속되었고 변함없는 우정은 끊어짐이 없었다.

신 군은 어릴 때 부모 잃고 형제자매도 없이 외삼촌 댁에서 외롭게 자라 정이

그리웠던지 정이 많았던 친구이고 공부도 제일 잘한 것 같다.

고등학생이 영자지 Time 지를 탐독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는 대학 대신 시험을 통해

통역장교의 길을 거처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 합창의장의 통역 부관으로

복무하면서 야간 대학에 등록해서 우리보다 늦긴 했지만,

학사모를 쓴 대단한 친구였다

또 다른 친구 황 군은 모 제약회사의 아들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여느 부잣집 자식들과 달리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았고 무척 겸손한 친구였다.


이에 비에 나 역시 농촌 출신이었으니 황 군에 비하면 둘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반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공부도 1~5등 안에서 주거나 받거니 했고

무엇보다 황군 겸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학교를 파하면 항상 우리 셋은 단짝이 되어 극장도

가고 때가 되면 식당에 들리기도 했지만 언제나 계산은 황 군의 몫이었다.

우리는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황 군은 계산을 도맡아 하면서도

우리에게 자존심 상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배려를 많이 해준 친구였다.

그의 이런 배려가 없었다면 우리는 부담 서러워 어울릴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후 신 군은 육군 대위로 전역하고 외국인 회사의 한국지사장으로

황 군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치렀지만 몇 번 실패하고 대신

서울 한복판에 호텔사업을 하면서 여전히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고 있었다.

대신 나는 공대를 나와 몇 가지 발명특허를 얻어 무일푼으로

밴 쳐 창업 길로 들어섰다.

여러 친구의 도움으로 당시만 해도 시내버스도 전기도 없었던 창동에 허름한

창고 하나 얻어 간판도 없는 회사를 차려놓고 상품 생산 판매원

자가용(자전거) 몰고 일인 4~5역 밤낮 뛰어다니며 5~6년을 고생고생을

하고 나니 대학 동기 중에 앞서가는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30~60대의 전성기를 보냈고 지금은 80대를 눈앞에

두고 살아오는 동안 만나고 해어진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았지만

60여 년 변함없이 인연의 끈이 이어져 오고 있는 친구는 우리 삼총사이다.

지금 두 친구는 자녀들 모두 출가시키고 사회단체에 봉사하면서 망중한의

노후를 보내고 있다

태평양 바다를 가로놓고 옛날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문명의 산물

덕분에 카카오톡 이매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건강 문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고 있다

 

옛날에야 대가족이 한집에 살면서 어른을 상전으로 모셔놓고 북적거리다

보니 외로울 여가조차 없었지.

그러나 지금은 자식들 호랑이 세끼 모양 뿔뿔이 흩어져 부모는 외톨이 신세가

되는 것도 시대의 흐름이니 자식 탓할 수도 없고 동병상련이라 할까

그리워지는 것은 아무 사심 없이 옛 추억을 더듬어 가며 심금을 틀어 놓을

수 있는 옛 친구가 제일이란 생각이 들고 노인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그저 인사치례가 아닌 진심으로 건강을 축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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