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11 밤1시 20분
지금 막 꿈을 꾸었다
길을 잘못 들어 어느 산간벽촌을 해매다 길을 잃은 것이다
누군지는 기억이 없지만 꼬마 녀석과 함께 어두운 숲속 밤길을
공포에 떨며 해매다 꿈을 깬 것이다
꿈을 깨고 나니 갑자기 60여년이 흘러간 소년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숙제로 제출한 작문이 장원에 뽑혀
국어선생님이 반에서 내 작문을 읽어 가면서 칭찬하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글 제목은 “시국에 시달린 소년”이였다
1951년 6.25전쟁이 한참이던 당시 타 지역은 모두 적의 수중에
넘어가고 학교 문을 닫고 있었지만 고향 김해를 포함해서 경남일부만이
최후의 보류로 남아있었다
당시의 일기장이 군에 간 사이 없어지면서 원본은 찾을 수 없지만
희미한 기억으로 재구성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국에 시달린 소년”
오늘도 무척 더운 날이다
김해비행장에서 이착륙을 거듬하고 있는 전투기들의 소음은 전쟁의
절박함을 말 해주는 것 같고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너무 더워 앞뒤 사방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책을 보고 있었는데
앞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아주머니 먹을 것 있으면 조금만 주세요.
너무 배가 고파요
창 너머 내다보았더니
10살이 조금 넘은 뜻한 소년이 어린동생의 손목을 꼭 잡고 서있었다
피난 소년 이였고 서울 말씨를 쓰는 것으로 봐서 아주 멀리서 온 것이 틀림없다
전쟁 통에 부모도 다 잃고 형제만 달랑 남아 여기까지 굴러 온 것 같았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떻게든 무엇이던 주고 싶은 생각에 막 나가려는 참인데
형수님의 소리가 들려 왔다
아니 누가 여기 들어오라 했어
먹을 것이 어디 있노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한데이
썩 나가거라.
이 말에 나는 그만 철석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 내게는 저애들을 도울 수 있는 아무 힘도 없음을 알았다
힘없이 다시 돌아서 나가는 두 소년이 너무 불쌍하고 처량해 보였고
오늘따라 형수님이 왜 이렇게 미운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없이 몰려와 동정을 청하는 피난민들에
인정이 매 말라 버린 것은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 잃은 저애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비록 보리 겨라도 모아 피난민들을 도우시는 어머님이 섰다면
무엇이던 먹을 것을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어머님을 찾았지만 들에 나가고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시국에 시달린 소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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