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가족 이야기

어머님의 일생-6-그리뭄의 사모곡이 되어

benny kim 2010. 4. 14. 23:24

- 죽었던 막내의 소생, 다시 만날 그날 까지~~ -

나에게는 위로 두 형님이 계셨고 막내 남동생이 있었지만 나와 함께
사시는 것이 제일 편안 하시다 했기 때문에 미국에 까지 함께 오셔서
30여 년을 함께 지내시다가 93세로 떠나시기 몇 년 전에 한국 막내동생
집에서 투병 하시다가 임종 하는 그날까지 미국으로 다시 오고 싶어 하셨다

내가 미국으로 오자마자 나는 혼자가 되면서 어머님은 어린 1남 2녀를
키워 주셨고 다시 부엌일 하면서 살림살이를 하게 하셨으니 어머님께 진
빛이 너무 너무 많았지만 그런 빚 하나도 갚지 못하고 보낸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이 있다

우리 아기들이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면서도 한국말을 잊지 않고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님의 품 안에서 자란 덕분이었고 막내 여동생이 딸을 출산하고 난 후
동생 집에 머무르며 이놈(브랜다 민희김)을 키워 주셨는데 부모님
할머니에게 바치는 효성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2번식이나 대통령상을 받고 지금은 명문 UCLA에 다니고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도 전에 동시 통역 자로 불려 다니는 신동으로 만든 것도
순전히 어머님의 사랑과 정으로 키워준 덕분임이 분명하였다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둘째딸 나릐는 결혼해서 내게 친손녀를 선물로 주며 행복하게 있고
큰딸 하나는 성악을 전공 하고 유타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쳤다 오페라
단의 일원으로 오페라 라 밸라 헬렌 주역 헬렌 역을 맞아 예술의 전당
불란서 파리공연에서 찬사를 받은 재원이지만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조국을 더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며 여러 곳의 러브 콜을 마다하고
한국으로 나가 조국의 뿌리와 고전 음악을 연구하며 자료를 수집 하고 있다

이런 어머님이 다시 한국으로 나가게 된 것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그놈의 진돗개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진돗개가 명견으로
귀여움을 받을 때인데 진돗개 새끼를 분양 받아 키워 이놈이 또 새끼를 낳았다.

가까운 사람에게 분양하는 중에 여동생(송자) 내에게도 한 마리를 보냈는데
이놈이 진돗개 특성을 부리면서 말썽을 너무 부려 도저히 더는 키울
수가 없다 해서 다 큰 놈을 다시 데려왔는데 이놈이 지 어미와 똑같이
닮다 보니 어머님은 어미와 새끼를 구분을 못 한 것이다.

어미야 새끼 때부터 길렀으니 어머님을 말을 고분고분 들었는데 이
새끼개도 어미와 똑같은 줄로만 알고 땅을 파기도 하고 말썽을 부린다고
빗자루로 슬쩍 때린 것인데 금방 그 특유의 사나운 성품대로 어머님을
공격하면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곳은 시골이라 큰 병원을 찾다 보니 막내 여동생 집
가까운 오렌지카운티 큰 병원으로 간 것이고 그곳에서 입원 중에 종합
검진을 하는 과정에서 결핵에 걸린 사실까지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결핵 치료는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낳다 하며 한국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하면서 자기에게도 어머님을 모실 기회를 달라는 갸륵한 막내의
제안에 우리 형제들이 동의 한 것이다

당시 동생은 한국 굴지의 투자 신탁 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경제적
여유도 있었지만, 어릴 때 다 죽은 놈 살려 놓은 어머님에게 마지막
보은을 할 기회도 주자는 의미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결국은 한국으로
나가셨고 결핵도 완치를 보았다

막내 남동생은 어릴 때 몹쓸 전염병으로 병원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치료 방법이 없고 생존 가망이 없다며 퇴원 시키라는 말에 따라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어머님 외는 다시 소생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달 동안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숨만 붙어 있는 상태라 아버님도
죽었다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성이 살려 놓았다 한다.
미음과 물은 목이 타는지 주는 대로 받아먹었는데 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큰 형님에게 한의원에 들러 약을 지어 오게 하였다 당시 큰형님은
10 리나 떨어진 김해 농업 중학교(당시 고등학교는 없었고 6년제
중학교가 있었다)에 다녔는데 귀가 할 때 한약을 지어오라 한 것이다

이 한약은 어른이 먹어도 무척 써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이었는데
얼마나 목이 탔는지 아니면 어머님의 정성을 느꼈음인지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한다.

몇 달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숨만 붙어있던 놈이 다시 태어나듯
울음을 터트리고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형님에게 시킬 필요도 없이 어머님은 단숨에 달려가 그 한약을
다시 지어 오고 하로 종일 밤잠도 자지 않고 간호한 덕에 다시 살아났으니
이건 기적도 아니고 오직 자식 사랑하는 모성애가 살리신 것이었다.

이런 동생이 보은의 마음을 가지고 모셔가서 결핵을 완치 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 준다 해도 하로 종일 아파트에 혼자 갇혀 있다
보니 갑갑해서 못살겠다며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셨다

동생은 차선책으로 큰 형님의 아들 딸 손자들이 있고(큰형님 내외는 돌아가셨다)
옛 친구들이 있는 김해 고향에 방을 얻어 놓고 손자며느리들에게
어머님을 돌보게 하였는데 손자와 착한 손자며느리들은 어머님에게
우리보다 더 잘 보살피다 보니 다시 어머님은 흙냄새 맞아가면서
옛 친구들과 지내는 것에 만족 해하셨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더니 갑자기 소화 불량으로 음식을 제대로 드시질
못해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 결과 췌장암 판정을 받으시는 바람에 결국
다시 서울 큰 병원으로 옮기고 정밀 검사 결과 암세포가 온몸을 번져
수술도 불가 하니 큰 고통 없이 임종을 맞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권유에 따라 어머님 자신은 병명도 알지 못하시고 6개월을 더 사시다가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임종하시기 전날까지 찾았다는 손자 종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도
어머님과 자식 보낸 한과 슬픔이 겹쳐 오래도록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모곡이 되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어머님이 한국으로 나가신 다음 해에 나에게는 46살에 얻은 유일한
아들이자 막내, 엄마도 없이 할머님 품에서 자라 따르던 손자였고
한국으로 나가고 나서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면서 할머니 보고 싶어, 할머니 사랑해요, 이렇게 재롱을 피우던
놈이었는데 17세가 되던 초여름 아침 친구들과 수영하려 간다며 나가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퍼 일 년 여 동안 아들 생각에 우울증에 걸려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 겨우 가슴에 묻어 놓은 자식의 악몽에서
깨어나려 던 참이었는데 어머님의 마지막으로 찾는 사람은 이 손자였고
그토록 사랑했던 손자의 음성이라도 듣고 싶어 하신다는 어머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 가슴을 치게 하였다

어머님은 이렇게 마지막 소원 하나도 풀지 못하고 6개월을 더 사시다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님의 충격이 너무 클 것으로 생각해서 그동안 손자의 죽음을 감춰
왔던 것인데 어머님은 무선 변고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던 놈이 몇 년째 전화도 없고 전화를 해도 만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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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터울의 고종사촌 형(김성수)이 종화 장례식
에서 낭송했던 애도의 시다-

종화야! 나는 너가 그리워 질 거야!

너는 나에게 너무 너무 친절했지
너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동생이었어.

너는 내가 숨 쉬고 있는 동안 시원한 공기였단다.
너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행복의 원천 이였었는데

너는 가을바람처럼 소리 없이 왔다가
한 마리의 비둘기처럼 “안녕” 인사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 버렸구나!

나는 알아!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항상 너와 함께 하였으니
너는 어디에서나 사랑 받는 아이였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때까지 나는 너를 그리워 할 거야!

리기 성수 김


To Jonas, I'll be missing you.

You were ever so kind to me.
You were ever so important to me.
You were like the air that I breathe.
You gave me the happiness I needed in my life.
You came so gracefully like the wind in autumn.

You flew away so quickly like a dove without a goodbye.
I knew that you were loved in the place you were in
Because God's gentle hand protects your every move.
I know we will meet again,
But until then, I'll be missing you.

6/10/2000 Ricky Kim


어머님!

그리도 사랑했던 손자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어머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머님은 생전에 조상에 대한 제사 상 차리면서
정성을 다한 그분들을 만나시고 사랑했던 손자까지 만나 섰으니
얼마나 기쁘십니까.

이승의 그 파란만장했던 생의 보상은 그곳에서 받을 실 것이라
이 불 초 소자는 믿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만날 그날까지 편히 잠드소서.

어머니~~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