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생활의 독소 -실종된 정신문화의 재건을 위해 -

benny kim 2008. 6. 18. 01:40

이 글은 과거 새마을 연수 원에에서 발간한 “새마을 운동”이란 통신교재에 수록된 본인의 글 인데 약30년이 지난 지금이 더욱 절실한 글이 될 것 같고 실종되어 버린 정신문화의 재건을 위해 “신새마을 운동”을 주창하면서 이곳에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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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독소 (1)

비소나 청산가리는 0.1~2Gm만 먹어도 즉사하게 되는 극독 물로서 이의 취급부의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당장 사회의 여론이 비등하여 그 책임을 묻고 문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납이나 수은, 크롬 등 비교적 독성이 약한 중금속에 대한 사고는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본인 자신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서서히 그 독성에 오염되기 때문에 때로는 무관심하게 되고 그 취급을 소홀히 다루기가 일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주의와 무관심이 지속되는 동안에 우리가 한시라도 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식수, 공기, 심지여 쌀보리 등의 주식에 까지 중금속에 오염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빈혈, 심장병, 고혈압, 암 등의 병을 유발하게 하여 서서히 죽어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저 독성 중금속이 오히려 비소나 청산가리보다 더욱 무서운 극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弘益人間)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해 오던 농심과 진, 선, 미, 의 위대한 우리조상들의 정신문화 유산과 주체사항이 근세 조선조 오백년 유교사상에 오염되기 시작하여 일제 삼십육 년의 시련기를 거쳐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 서구의 물질문명과 개인주의 사상에 극도로 오염되어 서서히 죽어 가다가 드디어 숨을 거두어야 할 순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국민과 지식인들마저도 어떤 약물에 중독이 된 줄도 모르고 있고 무관심 상태에 오래 방치해 두었다가 급기야 사경에 이르는 중병이 들고 나서야 부랴부랴 특효약을 찾게 되었고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좋은 처방을 내어 놓고 특효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와 같은 오랜 시간 두고 오염된 중독자에게는 특효약이란 없는 법이다 .

병이 깊은 만큼 회복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결코 서둘지 말고 내 스스로의 주위를 먼저 둘러보며 맑게 정리 정돈하여 우리의 아들딸 손자 손녀가 오염되지 않은 물을 먹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우리들 스스로를 정화하며 자라나는 이세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정, 학교, 사회의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줄때 비로소 우리의 전통적인 효사상과 농심의 깊은 얼도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오십년이 걸릴지 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세계 속에 진정한 문화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이길 밖에 없는 이상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와 가정, 사회, 국가 모두 합심하여 우리의 정신문화를 병들게 한 독물의 정체를 찾아내어 해독제의 처방을 연구하고 정화의 길에 동참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다.

이에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문화와 주체사상을 죽어 가게 만든 독물의 정체는 무엇이며 오랜 시간 두고 장복해야 할 해독제는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면서 필자의 소견을 가지로 감히 여러분들이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

1)부정적인 암시에서 오는 독성

암시란 충격적이거나 아니면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들려주게 될 때 그 말의 뜻이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무의식중에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러한 암시는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나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존경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게 되며 결국 인간은 이 암시에 따라 성패의 갈림길이 되고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하며 의사도 또는 법관이나 농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

결국 암시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여 주는 것으로 교육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

인간으로 하여금 최고의 선을 추구하게 하여 인격의 완성을 향한 행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암시를 준다는 것이 곧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교육이란 인간의 삶을 변화 시키는 것이지 지식을 전수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교실에서 법학을 배운 법학도가 법률지식을 적용함에 있어 외적인 교육환경(가정, 학교 , 사회)에서 긍정적인 암시를 받은 자는 훌륭한 법관이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암시를 받은 자는 배운 법 지식을 취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악덕 변호사가 되던가 아니면 지능범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교육이란 법률지식을 전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법을 운용해야 하는가 하는 선한 암시를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도산 선생은 이것을 덕육이라 하시고 체육과 지육의 바탕이 되는 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 하셨다 .

이러한 선한 암시란 전문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서든지 듣게 된다.

가족, 친구, 교사, 심지어 어린 이아들로 부터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스승이요, 세상의 모든 곳이 다 나의 교육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스승인 이상 모두가 다 선한 암시를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

그것은 선한 암시의 원천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되찾자는 정신문화요, 홍인인간과 농심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의 확립이라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민족사적 맥락에서 우리의 정신 무화와 주체사상을 되찾고 정신혁명을 통하여 여태까지 지니고 있던 부정적인 사고, 부정적인 암시만 무책임하게 남발하던 의식구조를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에 우리가 그동안 부지불식간에 중독되었음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부정적인 암시의 독성과 패해가 얼마나 컸던가를 살펴보면 그 해독제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2)가정과 학교에서 오염되고 있는 독물

이런 의사는 없겠지만

의사 세 사람이 단합한다면 말로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다고 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의지하려 하고 의사를 믿는다. 자기가 믿고 의지하던 의사로 부터 절망적인 말을 듣게 될 때 환자는 아주 강한 암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암시를 계속해거 받게 된다면 그 환자는 정신적으로 회복 불가는 상태가 되고 부정적인 사고가 행동을 지배 하게 되기 때문에 약도 음식도 먹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이다 .

의사의 진찰하는 태도와 나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확신을 주는 것이 처방하는 약효의 50% 이상을 지배 한다고 한다.

가정에서 부모 학교에서 선생님이 의사로 비유한다면 환자는 우리들의 자녀요 학생이 된다.

누구도 자녀와 제자를 죽이기 위해서 위와 같은 의사가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가 않다 가정과 교육계를 둘러보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귀여운 자녀 청소년들에게 절망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무서운 암시를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하마터면 패인이 될 뻔했다가 운 좋게 되살아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갖고 있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까지 한글도 깨우치니 못했고 더하기 빼기 셈도 못했던 이름 그대로 바보였었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1학년에 들어가자마자 우연한 기회에 단임 선생으로부터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그 선생은 계속 이름 대신 바보라 불렀다 .

설상가상으로 그 선생이 5학년 1학기 까지 단임을 맡게 되었으니 필자는 그저 4년 6개월 동안 친구하나 없이 스스로 바보인줄로 만 알고 바보 노릇을 해 온 것이다.

과연 나는 바보 이였을까? 지금생각하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였지만 그 선생의 무책임한 말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그분은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운 좋게도 5학년 2학기에 손 건배 선생님이라는 분이 전근오시고 새로운 담임을 맞게 된 것이다 .

우리는 이 손 선생의 처방에 주목해야 한다.

나의 생활 기록부에는 부정적인 빨간 글씨로 어린 학생의 가슴에 가혹하리만치 난도질을 해 두고 있었지만 손 선생님은 그 많은 빨간 글씨에 대한 선임관이나 편견을 갖지 않고 미술성적이 좋다는 곳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를 접견해 주셨다

모든 학생들이 개인접견을 했는데 필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 참으로 형편없는 성적에 대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참새처럼 가슴 두근거리며 교무실로 들어가던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학적부를 들여다보고 계시던 선생님은 나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주어 수시면서 “XX야! 너는 정말 외로웠겠구나. 자 이제부터는 이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 주지!”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 필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생전 처음으로 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느낀 것이다.

조금 전의 두려움이나 긴장감은 없어지고 평온함을 얻었을 때 선생님은 필자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을 아시고 몇 가지 그림 그리기 시험을 하시고는 ( IQ 테스트를 한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김 XX ! 너는 결코 바보가 아니야! 너는 천재가 될 수 있는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지만 활용하고 있지 않을 뿐이야! 자! 지금부터 공부하자! 너는 분명히 일등도 할 수 있어!”

그날부터 비로소 책을 보기 시작했고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가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1주일 만에 한글을 깨우치고 2개월도 채 못 되어 산수를 진도에 맞출 수 있게 되었으며 5학년 말기에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우수한 학생으로 변화된 학생이 된 것이다.

전자의 선생은 바보라는 부정적인 암시를 주고 있을 때 나는 바보였고 손 건배 선생님과 같은 위대한 요육 자를 만났을 때 나는 우수한 학생으로 변화 된 것이다.(검색창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손 건배 선생님” 검색해 보시길 바란다)

우리의 2세들을 별처럼 빛나게 키워야 할 교육자와 부모들은 정말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주위에서 오가는 말 가운데 이렇게 무서운 독물이 없나를 살펴야 하다고 생각한다.

못난 녀석, 부랑 쟁이, 거짓말쟁이, 바보 같은 놈, 깡패 같은 놈, 말썽꾸러기, 염병할 놈, ---- 등 수많은 말들이 모두 우리들의 평범한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말들이고 독약인 것이다. 어느 어느 일류 대학에 가야 한다,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검사, 판사,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강조하다보면 자신의 적성과는 관계없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인생의 목표를 삼게 된다.

우리의 학생들이 성적이 좋게 되면 실업계를 외면하고 인문계열만을 지망하려는 관료주의 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은 우리의 주위에서 주고받는 말 가운데서 받은 암시의 결과인 것이다.

~~~~중략~~

어찌된 일인가? 부정적인 버릇이나 행동은 긍정적인 평가와 칭찬이 치유의 비결이고 처방이란 학설이 정설로 확인된 지 오래인데 어째서 우리에게만이 유독 이러한 독소가 아직까지 남아서 어린 새싹들을 병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교육이란 미래 지향적 이여야 하고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면으로 변화 시켜주는 암시라 한 이상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평가 기록을 남기는 것은 비교육적인 독물이 되는 것이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1+1=1 (반죽된 흙덩이 둘을 합치면 한 덩어리가 된다고 생각했음)인데 1+1=2 가 되느냐 고 질문을 했을 때 선생은 그 의문을 풀어 주지 않고 바보로 취급하다 계속 질문을 하는데 대하여 불손한 학생으로 평가하였는데 에디슨의 어머니는 이러한 무자격 선생의 무서운 암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게 하고 스스로 교사가 되어 에디슨의 호기심 가득 찬 천재성을 인정해주며 위대한 발명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일선교사들이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무었을 기록하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미국 교육교재에 자니 링고 라는 이야기가 소개 되어 있다 .

그 내용은 나라 분디라는 섬의 결혼 풍습을 비유한 내용으로 그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그곳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데려 오기 위해서는 신부의 정도에 따라 소로서 신부의 값을 치러야 했다.

좀 못한 처녀는 한 마리 보통은 두세 마리 정도 네 마리 정도면 최고의 신부를 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 싸리 타라는 처녀에게 청혼이 들어 왔는데 이 처녀가 소 몇 마리나 받을 수 있을 것인가가 화제 이였다. 대개 한 마리 정도 운이 좋으면 2마리 받을 것이라는 여론 이였다.

그러나 막상 자니 링고 라는 청년은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싸리타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모든 섬사람들은 소 한두 마리면 족할 것을 여덟 마니나 준 자니 링고를 바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여덟 마리의 값으로 인정을 받고 시집온 싸리타의 변화된 성품과 행동 모습을 보고서야 그 값이 정당했음을 모두 인정하게 된다.

즉 싸리타가 한두 마리의 소의 값으로 밖에 인정받지 못했다면 처녀 때나 다름없이 행동이나 예의범절 등에 변화가 없었겠지만 스스로 여덟 마리로 평가 받고 인정을 받으므로 인하여 모든 면에서 훌륭한 신부로 변화 되었다는 것이다

후일 섬사람들이 자니 링고 에게 당신은 왜 한두 마리면 될 것인데 여덟 마리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곳 부인들은 누구나 다 그러하듯 자기 남편이 얼마를 내고 자기를 데려왔는가를 자랑 합니다 어떤 여자는 소 네 마리 다섯 마리라고 자랑하는 분도 있지요 그런데 한두 마리에 팔려온 여자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내 아내에게 만을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고 싶었지요. 더욱 중요한 이유는 내 자신 소 여덟 마리짜리의 가치 있는 부인을 얻고 싶었던 것이지요. 남들이야 어떻게 평가하던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렇게 평가 했으니까 그 값은 정당한 것 이였습니다.”

가치 있는 교육은 현재보다 더 높이평가 해주는데 있는 것이다. 만약 현재보다 낮게 평가를 한다면 가치 없는 삶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이것을 비교육적이라고 하겠다.

가정교육에서는 어떠한가?

뒷집의 길동 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예절도 마른데 너는 어찌 그 모양으로 만날 말썽만 부리느냐 ? 하는 식으로 꾸중하는 우리네 부모님들이다.

자기의 귀한 자식을 타인과 비교할 때 항상 부정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평가를 하는 것은 치명적인 독소가 된다. 긍정적인 면에서 비교하고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것이 해독제가 되고 양약이 된다.

3)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중독 시키는 독소들

가정문제로 상담했던 한 가정주부의 이야기이다.

이부인은 첫 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한 남편과 살고 있는데 남편과의 불화로 더 이상 가정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운명적으로 이 결혼도 깨어지게 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부인이 중학 2학년 때 그녀의 어머니가 무당에게 가서 사주를 보았더니 그녀는 결혼을 두 번 실패하고 세 번 결혼을 해야 하는 액운을 갖고 있는데 이 운세를 벗어나려면 XX만원의 헌수 금을 바치고 신풀이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당시 경제적 형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그녀가 자라 결혼을 할 때까지 그녀의 불길한 팔자사주를 한탄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 왔다는 것이다. 무당의 말대로 정말 첫 번째 결혼은 실패 했고 이제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나려 하는 것이다. 실패의 원인은 그 무당의 암시에 의한 최면에 걸려 그 말을 믿는데서 오는 결과인 것이다. 애초부터 그러한 사주를 보지 않았다면 그녀는 결코 첫 번째 결혼도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처음 결혼할 때부터 헤어질 것을 생각했고 자녀를 가져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임신 공포증이 생겼고 그로 인한 부부 생활이 원만해 질 수 없었던 것이 이혼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건전한 정신을 좀먹게 하는 무서운 독소가 사회의 어두운 곳에 도사려 우리들의 자녀 가정 사회를 파탄시키는 무서운 독소들이 바로 이러한 무당 점쟁이 무속신앙인 것이다

왜 우리는 최고의 학부를 나온 지식층에서 부터 가난한 서민에 이르기 까지 이토록 허무한 무속적 신앙의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정신적인 주인인 정신문화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속에 도사리고 있는 해묵은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자, 불신과 부정과 정도가 아닌 길은 가지도 말자, 이 모든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와 국가를 오염시키는 독소들이니까 ----

“ 안된다고? 이 순진한 사람아!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기름은 (뇌물을 ) 좀 처 달라는 뜻이야!” 흔히 주고받는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네 주위에서 사라 지지 않은 한 우리의 민족정신은 결코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갰다.

4) 우리 모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자!

먼저 의무를 다하면 권리는 저절로 찾아온다.

나쁜 면만 보고 헐뜯지 말고 좋은 점을 보고 칭찬 해 주며 살자. 뇌물은 주는 자가 없으면 받는 자도 없어진다.

짐승은 떠난 자리가 더럽고 지저분하지만 사람은 그 떠난 자리가 깨끗한 것이 다른 점이다.

거울 속의 참 자아를 찾아라.

세상의 모든 사람, 가정, 직장, 사회, 국가 모두가 나를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내가 걸울 앞에 서서 웃으면 웃어 주고 인사 하면 반드시 답례를 한다. 화를 내어 보아라. 같이 화를 낼 것이다. 미려한 자는 자신의 모습인줄 모르고 거울을 깨어 버린다. 그래서 진정한 참 자아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만다.

열등의식으로 자학하는 행위, 가정에 불만을 품고 가출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 국가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불법데모 방화 살인하는 행위, 등은 모두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분개하며 거울을 깨어 버리는 우매한 자들의 행위이다.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서 농심을 심고 국민 개회운동을 다짐 하며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으로 때 묻고 오염된 해묵은 독소들을 한 겹 두 겹 볏겨내고 우리의 아름다운 홍익인간의 민족성신을 되찾아 새 역사를 창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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