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야기

김영희씨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benny kim 2006. 2. 10. 02:48

 


 

김영희 그땐 미쳐 몰랐습니다

 

벌써 5-6년이 지났습니다

애틀란타에서 개최한 전시회 참가차 한국에서 오신 손님 (이우근 ) 모시고 애틀랜타를 방문 적이 있다

호탤을 예약 하려는 그곳에 계신는 친구분이 이런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은 형제처럼 방가워 하는 분이 계신데 그분집에서 민박을 하면 어떻겠는냐는 것이다

이선생도 대환영이라 좋다고 해서 김영희씨 댁에서 여장을 풀게 되었다

 

애틀란타 변두리 평범한 집이였지만 현관에 들어 서자 한국 냄세가 물씬났다

현관에 신발이 널려 있는 하며 (미국 분들은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 때문에 현관에는 신발이 없다) 가구며 장식이 한눈에 한국의 정서가 풍겨 나왔다

그런데 특이한것은 거실이면 방이며 모두 슈퍼 볼을 쥐고 있는 청년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슈펴 팬이신가 봐요 했더니

우리 아들팬입니다 하면서 아들 자랑이 시작 되였다

하인스 군은 경기스케쥴에 따라 집에는 없었다

 

한국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 받고 밤참까찌 얻으먹으면서 위대한 어머니의 피눈물나는 이생 역전을 듣게 된것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마음 깊이 깔려 있는 여인의 한을 들어 주는 만으로도 이렇게 감사 할수 있을까

 

모처름 한국 말로 솓아 놓은 눈물의 휴먼 드라마는 정말 감명깊게 들려 왔고

거대한 사회의 인종적인 평견과 싸우고 있는 연약한 어머니의 위대한 혼을 보았고 누구도 들어주는 없는 함성소리들 들을 있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사회의 배척을 당해야 했는데 한국인 혼혈아라는 이유로 흑인 친구들에게 까지 따돌림 당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갈기 갈기 짖어 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안단 말입니까 ?"

 

"내가 무선 일이 있어도 우리 아들 보란 듣이 성공시켜

이사회의 편견에 경종을 울려 놓고 것입니다 "

 

라는 말을 때는 눈에는 눈물로 번벅이 되여 있었지만

전쟁에 임하는 위대한 전사의 모습이였다

 

그러나 아들이 당시 그렇게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지만 지독한 효자라는 것을 자랑 하고 있었다

 

효자도 위대한 선수도 저절로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모성애와 집념이 가져 온것은 틀림이 없다

김영희 당신의 집념과 소망이 성취 된것에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죄송한 마음도 합께 보냅니다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의 아들에 대한 집념을 너무 과소 평가 한것은 사실이 였고

그져 어머니로서의 소망이고 바램이지 오늘의 하인스 군을 상상 하지 않았으니까요

 

(떠날 숙식비를 주려는데 한사코 사양 하시면서 " 이선생님 해외 여행 하시면서 절약하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