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렌일기 -중-지금은 없어진 필렌 한인반상회
우리 속담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다는 말과 같이 미국이 아무리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나라라 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베푼 정에 오는 정도 있었다는 것을 실감 한때도 있었다.
예를 든다면 한국사람 한 분이 자정께 음주운전을 하다 이 지역 세리프(경찰) 단속에 결렸는데 양팔을 들고 똑바로 걸어 보라
했다. 비틀거리며 걸었더니 집이 어딘가 바로 2마일 앞에 있다 했더니 신분증 주소를 확인한 후 너 한국인인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조심해서 가거라. 하고는 나는 오늘 너를 본 적이 없다 알겠나 하더란다.
또 다른 예로 술에 취해서 어두운 밤에 철길 건널목이 없는 길을 건너가다 그만 차가 철길에 걸려 버린 것이다 마침 멀리서 기차가 오고 있었는데 달려가서 정시 신호를 보낸 후에 도망을 친 것이다. 기차는 멈춰 섰고 경찰이 와서 차는 견인되었지만, 이 친구 술이 깬 후 다음 날 아침에 세이프 사무실로 가서 자수했다 왜 철기로 들어갔나? 물었는데 철길 너머로 하얀 길이 보여 연결된 줄로만 알고 갔다 그런데 건널목도 없는 곳에 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판을 부쳐놓지 않았느냐 하며 도리어 불평을 했더니 경찰도 한국인이라 용서해줄 구실을 찾고 있던 차라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보내 준 것이다
또 한 예로는 한인 한분이 잡초를 태운 후에 완전히 불을 끄고 출근을 했는데 그만 불씨가 살아나 무성한 잡초에 이웃까지 불이 옮겨 붙어 소방차가 와서 불을 끄기는 했지만 이런 경우 잡초를 태울 때 미리 신고도 하지 않았고 소방차가 왔다 가면 많은 벌금이 부과되는 것이 관례인데도 매년 소방서에 기부해온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이게 다 한인반상회가 평소에 지역사회에 기부도 하고 봉사를 해온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기왕에 반상회 이름이 나왔으니 미국 교포사회 유일의 피렌 한인반상회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가 없겠다
1992년까지 한인 4가정이 이주해온 이후 정병호 씨의 베델 벌꿀 농장 이강남 배기찬 씨의 유명한 구름이 머무는 곳 멧돼지농장 김스분재원의 무료 분재강의 등이 신문에 특집기사로 나가다 보니 자연히 LA, Orange county 우리 한인들의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이 되었고 마운틴하있의 숲이 우거진 잭슨 레이크 호수가 여름 캠프, 한국의 정능을
연상하게 하는 물이 흐르는 빅락 계곡 (필자는 피렌 정능골자기란 별명을 붙였다) 이 있고 마운틴하잇 겨울 스키장, 만하잇 약수터, 별장 방가로 등등, 여기에다 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엄하고 보수적인 스노라인 교육구가 있다 보니 자연히 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지역이 된 것이다
Phelan 한인 반상회
이러던 차에 1996년 조남규 씨 생신 파티에 20여 우리 한인 가족들을 초대하면서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새로운 소식과 정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주고받은 대화 가운데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에 어떤 분이 우리 돌아가면서 매월 한 번씩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이 어떤가. 제안하자 이구동성으로 손뼉을 치며 좋아했던 것인데 이것이 반상회라는 이름은 후에 붙게 되었지만 반상회가 태동한 동기가 된 것이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 교포사회에서 내 이웃에 누가 이사를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인심이 메말라 가는 것에 비하면 이곳으로 이사를 오시는 분들은 제일 먼저 반상회에 등록하고 다음 모임에는 자기 집에서 갖게 해달라는 주문이 밀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처음 이사 오신 분은 이곳 정보를 잘 모를 수가 있지만, 반상회를 통해서 모두 해결이 되고 금방 가까운 이웃이 되어 불편 한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다 보니 반상회가 참 좋다며 누구의 강요 없이 대부분 반상회를 기다리고 참여율도 80%가 넘었다
이렇게 반상회는 이어져 왔지만, 어느 단체와는 달리 회장도 회칙도 없이 형식상 본인이 자원하여 월례 반상회 모일 일자 장소와 함께 새로 이사 오신 분 등을 소개하고 마음의 양식 칼럼으로 편집한 1~2페이지짜리 반상 회보를 송달 하다가 1998년 5월 15일 반상회에서 반상회라면 화장이던 반장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회장을 뽑아놓으면 감투싸움으로 분열이 생길 수 있으니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제일 연장자이신 이창구 씨를 반장으로 모시자는 제안에 만장일치로 종신제 초대 반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과열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오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 반상회 모임에 100명이 넘어가는 때도 있어 그동안 아무 보조도 없이 주관하는 가정에서 모든 식사 경비를 독자 부담한 것인데 이것이 도리어 어려운 분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된다 해서 회비제도를 도입해서 식대를 지원하고 장소만 제공하게 하자는 의견이고 기왕에 회비를 받을 바에는 정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2002년 4월 반상회에서 정관을 통과시키고 월 회비도 일인당 $10식 참석할 때마다 부담하기로 하였고 초대 이 창구 반장을 승계해서 임기 2년제 제2대 회장으로 김윤중 씨를 선출했다
이어서 3대 유영식 (6/1/04~5/31/06) 4대 정병호 (6/1/06~5/31/08)까지 사심 없이 봉사하신 분이 섰지만 유감스럽게도 5대 김XX (6/1/08~5/31/2010)에서 그 유명했던 피렌 반상회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는 자제해야 하는 입장이라 이곳에서 심각한 이야기는 언급을 피하겠다. 다만 우리 한인의 치명적인 약점이 단결하지 못하는 약점인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고 어디든 잘나가는 것 못 봐주는 고질적인 병폐가 주원인이라 보면 되겠다. 부동산 붐을 타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며 몰려와 평화로운 전원 마을을 오염시켜놓고 이 지역에 한인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투욕에 또 다른 필렌 한인회를 만들자라는 말까지 나오다 보니 초기 올 타이머들이 외면을 한데다가 마지막 5대 회장은 새 회장 선출도 재정도 인계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떠나 버림으로써 1996년 태동한 반상회는 14년 만에 그 수명을 다하고 자동 해산되고 만 것이다. 이후 새로 이사 오신 분들을 중심으로 반상회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모임을 갖기는 했지만 원래 반상회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오래가지 못하고 피렌 반상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반상회를 통해서 필렌이란 곳이 우리 한인사회에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하이데져트 전체에 한인들의 좋은 이미지가 미 주류 사회에 남기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초기 30~40가구가 감투도 없이 오순도순 모여 지역사회에 봉사도 기부도 하며 이웃 정을 나누던 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