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
겨울밤은 참으로 길다
자도, 자도 졸리기만 하던 그 많은 잠은 어디로 가 가버렸는지
어릴 적 할아버지 질화로에 담뱃대 두들기는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내 나이 벌서 할아버님의 연세가 되었구나.
긴 장죽에 부싯돌로 불을 댕겨놓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를 품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귓전에 들여온다.
허참 밤이 참으로 길고 길 구나
닭이 운지가 언제인데 아직 태동할 기미가 보이지가 않으니 원
지금은 새벽닭 울기를 기다릴 것도 없고
언제 태동할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런 일은 없으니 조금은 덜
답답하다마는
긴 밤 지겹게 기다리시던 할아버님의 마음은 이제야 알 것만 같구나.
화장실 가라 깨워주는 생리 덕에 일어나
볼일보고 나면 자정이 조금 지난다.
아 벌써 닭이 울었겠구나.
침대에 다시 돌아와 봐야 잠님은 다시 오실 생각 없을 태고
부싯돌로 장죽에 불붙일 대신에 컴 앞에 앉아 보니
보이고 들리는 소리는 온통 암울한 소식뿐이로구나
아무도 없는 적막강산 이 밤에 혼자 긴 겨울밤을 보내자니
어릴 적 고향산천이 그리워지는구나.
젊은 시절 애송하던 시 한수 응얼거리며
외로운 나그네의 향수병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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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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