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야기

영김 씨 푸에블로호 납치 산증인

benny kim 2009. 1. 19. 02:04

 

 

 

-납치 41년 만에 공개되는 한국인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미국인들의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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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호 사건 보고서에 대한 미국방성의 공로장 등을 수령한 영김씨

 

지난 1월 9일 이곳 미국 Daily Press 지 일면 톱기사로 1968년 동해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강제 나포당한 미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의 산증인 으로

Young Kim 씨를 41년 만에 공개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영김 씨는 필자와 이웃에 살면서 호형호제 사는 사이 이고 이분이 과거에

미정보국 소속 이였고 한국전 당시 미군의 일급 기밀을 취급하는 정보통이며

한미 간의 첨예한 정보에도 접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푸에블로

호에 대한 산증인 이였다는 것은 이 기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미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 호 사건은 1968년 1월 23일 북한 초계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며 승무원 1명 사망 13명의 부상을 당하고 원산항으로 나포된 사건이다

당시 승선인원은 장교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총83명이였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으로 인한 반전(反戰) 여론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상태를 원치 않았고 인질을 구출하기위해 공해상에서 나포당한 일을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고 시인하는 등 상당한 양보를 하고 납치된

승무원은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게 된 것이다

 

이분이 새삼 당시 상황의 일부나마 공개하게 된 이유는 당시 승무원 중

4명이 북한을 상대해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2월 30일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북한은 6500만 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으므로 이

사건이 다시 여론의 중심에 들어 왔기 때문이고 이 소송을 진행한 원고

측에서는 영김 씨가 당시 사건에 대한 72폐지에 달하는 보고서가 결정적인

승소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김 씨는 미국 정보국의 요청으로 당시 북한과 납치 선박간의 무선

통신을 미정보국 첨단전자 장비에 의해 남김없이 도청되고 있었고 그 도청 녹음 중에

“북한 초계정에서 지금 적함은 공해상에 있다 어떻게 할까?”

“강제로 영해로 끓여 들여 놓고 원산으로 예인하라”

라는 대화 내용 등을 토대로 통화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그 진상을 보고

했고 이공로로 미 국방성으로부터 공로 장(사진 중 우편액자)을 받기도한 것이다

 

영김 씨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연방법원의 판결은 시작에 불과

하고 아직 79명의 피해자가 있다 소송은 계속될 것이고 본인은 이분들을

도우기 위해 신문 인터뷰에 응했지만 미 국방성에서 먼저 공개하지 않은

기밀은 밝힐 수가 없는 것이 원칙이고 이미 72페이지의 보고서가 공개된

이상 이에 대한 증인이 되어 당시 승무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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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리 프래스지의 기사 내용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