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살맛 나는 이야기

살맛과 죽을 맛이 사는 곳

benny kim 2009. 1. 6. 23:47

살맛과 죽을 맛이 사는 곳

이보소. 김형!

세상 살만큼 살아보았으니

사는 맛도 알만 하지 않소?

글쎄올시다

살맛이라

 

그 살맛 좀 보려고 여태까지 헛일만 하며 살아 온 것 같소이다.

헛일이라니 ?

 

세상만사 남부러울 거 없이 다 누려 보았지만

그기에 살맛이란 없었소이다.

 

그래도 항상 살맛에 대한 희망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허우적거리며 벌써 70의 고개를 넘고 보니

아 그놈의 살맛이란 게 저기 지나온 여정 아래에서

잘 가시라 손짓을 하고 있었소이다.

 

손짓하는 놈이 누구였소이까. ?

 

부귀영화도 아니었고

잘 먹고 잘살면서 어시 대던 놈도 아니었고

희망에 부풀어 기고만장하던 놈도 어니였소이다

 

그럼 손짓하던 그 살맛나는 녀석을 누구 이었소이까?

 

아주 얼릴 적이었지요.

간질병에 걸려 시가집에서 쫓겨나고 남편에서 버림받고 돌 지난

애기 들쳐 엎고 가끔 저의 집을 들리곤 하던 사촌누님이 있었지요.

발작이 일어날 때는 아무대서나 거품을 머금고 넘어지니 참 무서웠지요.

돌 지난 애기만 죽어라 울어 대였지요

 

이런 누님 삼촌 집에서 눈칫밥만 얻어먹다 떠나곤 했지요

어린 마음에 자나 깨나 그 불쌍한 누나 생각하면서

누나 다시 오기를 기다리던 그 마음!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살맛 이였던 것 같습니다

 

용돈이 생겨도 누나 생각하면서 모아 두었다가 누나가 오늘날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러다 쌀 조금 얻어 이고 떠날 때 아무도 모르게

모아 두었던 용돈 누나 손에 쥐어 주면

 

XX야!

돈보다 이세상이 다 나를 버리는데

나를 기다려 주는 네가 그리워 오는 것이고

너의 따뜻한 그 마음이 나를 울린단다.

하시며

고사리 손 꼭 쥐어 주던 그 누님의 따스한 체온을 느낄 때는 정말 살맛나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만

누님의 소식 기다리다 지쳐 한동안 살맛의 희망도 잃어버렸던 추억이 있지요

 

6.25전쟁 비참한 때 이였지요.

 

피난민 가족들 학교 운동장에 움막을 치고 살았지요.

보리 겨 풀죽 끊여 먹으며 연명하던 때 이였습니다만

그러나 풀죽이라도 끓이려면 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어떤 분이 우리 집 개집 앞에 개밥그릇으로 쓰던

다 찌거러진 냄비를 빌려 달라 했지요

빌릴 것 없이 가져가라 했는데

 

2년 후

휴전이 되고 그분들 개밥그릇 돌려주면서

온가족이 수십 번 절을 하면서 그렇게 고마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개밥그릇 덕분으로 살아 왔다나요

이분 가족들의 그 감사하는 마음처럼 진정한 감사는

아직도 느껴 본적 없었습니다.

 

찌거러진 개밥그릇에 감격해 할 수 있는 인간가족

이런 야기 들으면 살맛나지 않습니까.

 

지나고 보니 살맛이란 게

멀리 있지도 않고

부귀영화 속에 있지도 않았고

 

비록 판자촌에서 풀죽으로 연명하는 곳 이였지만

인간본연의 심성으로 돌아가 더불어 사는 곳에서

살맛이 살고 잇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불에 몇 십 몇 백억 강아지 이름처럼

부르며 뒤주머니에 쑤셔 박아 주어도

고마워 할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는 먹이 사슬에 얽매여

모두들 죽을 맛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각박한 현주소에는

살맛보다 죽을 맛만 큰 소리 치며 살고 있는 곳이었더이다.

 

김군!

 

하산길이지만 희망 버리지 말고

희망가 부르며 조심해 가게

살맛이 어디에 사는지 알았으니

하산 길이지만 만날 수가 있지 않겠나.

 

희망가라!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