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전 판박이
그런데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도 오늘을 기념하는 행자도 4·19혁명 희생자 추도 모임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치하는 분들이나 국민들 잊지 말아야 하는 행사는 하지 않고 5·18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 회칠해서 요란하게 떠벌리고 있으니 참으로 훗날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어쩔는지 모르겠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우리 세대에게는 오늘날 현실이 어쩌면 4·19혁명 당시의 정국과 너무도 닮았고 머지않아 국민들의 대 저항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당시 자유당 이기붕 일당이 떠벌린 3·15부정선거로 국민주권을 탈취하려다 당한 꼴과 가짜 민심을 만들어낸 촛불 쿠데타나 드루킹의 조작된 민심으로 국민을 속여 나라를 통째로 도둑질한 현 정부가 판박이다
다만 다른 것은 중고 대학 학생들의 젊은 피가 없어져 버린 것이 안타깝다. 그동안 전교조 공산 프락치 가짜 선생들로부터 세뇌된 젊은 세대 들에게는 철학도 정의도 선악의 분별조차 하지 못하고 부정한 온갖 비리를 보면서도 분개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4·19혁명 당시 필자는 대학 4학년 우리들은 불의에 항거하여 이승만 대통령까지 하야하게 했지만, 치안 정국은 실종되고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이에 당시 각 대학 학생대표들이 긴급이 모여 치안 수습 단을 조직하고 팔에 수습이란 완장을 차고 후배 학생들을 선도하면서 스스로 치안을 담당했다. 이런 모습을 본 송요찬 계엄사령관은 육군 본부로 각 대학 대표들을, 긴급소집해서 각 지역 경찰서를 접수하게 하고 즉석에서 필요한 자금수표를 발행해서 주었는데 우리는 현금을 찾기 위해 밤 통금시간이 지났는데도 한국은행에서는 문을열어 놓고 즉석에서 현금을 내어 주었고 경찰서에 도착하니 계엄사령부에서 보낸 치안담당 집 차 2대가 벌써 와 있었다
이렇게 나흘 동안 치안을 계엄군이 아닌 대학생들에게 맡겨 정국을 안정시킨 것이다. 본인을 비롯한 당시 한양대학 학생대표들은 성동경찰서를 접수하고 성동지역의 무질서를 수습한 경험이 있었고 수습이란 완장을 찬 학생들이 각 파출소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니 숨어있던 경찰관들도 사복을 입고 함께 했던 경험은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학생들은 불의에는 무서운 사자와 같이 싸웠지만 우리들의 요구가 관철되고 나서는 순한 양이 되어 혼돈의 무질서를 바로 세울 줄 하는 지성인이었다
~~~~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작년 10월경 당시 함께 했던 채규준 동문과 주고받은 카톡 매일 일부를 공개한다
**************************
김병희동문에게 ==
여기 태국 방콕에서 지구의 반대편인 미국에까지 카톡이 연결되다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네 그려.!
그러니까 1960년 ~~~그간 57년이란 무상한 세월이 흘러갔네….
잘 있다니 반갑기 그지없네.
학창시절에 우리들은 후회 없이 열심히들 노력했었지. 4 혁명 때는 성동경찰서를 접수하여 4일간의 치안확보를 담당할 때 송요찬 계엄 사령관의 방문과 격려가 추억으로 생각나기도 하네그려….
나는 학창시절의 전공을 쫓아 장장 80세까지 54년간을 석유화학 분야에 종사할 수 있었으니 행운아라고도 생각되네….
석유화학단지인 Texas Huston 단지에 2번 출장도 갔었고. Puertorico Ponce에 있었던 옥타놀공장에는 3번이나 갔었지. 그조차도 세계제 2위의 석유화학단지인 싸우디의 Al Jubail 에서는 3년 반의 Hard Training은 값진 경험이었었네.
나는 병자생 쥐띠로 82세가 되었고 아마 병희는 내 연상으로 알고 있는데 맞지.!
슬하에 자녀들은 몇이나 두었는지?. 난 2남 2녀 넷에 손주들이 7명이고 싱가포르에 차남 가족이 있고 나머지는 전부 서울에 살고 있다네. 장남은 서울공대 기계과를 졸업히거 시카고 일리노이 공대에서 MBA도 했고 43세에 LG 전자 상무이사를 하더니 47세 그만두고 독립하여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더군. 후략~~
늘 건하시게나.!
태국 방콕에서 채규준
----------------------
채규준 동문에게
~~~
쵀규준 그러게 말일세!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카톡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일세 자네는 니주비료공장 입사에서부터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엇네 석유화학 분야에서 오늘의 선진한국 건설의 자랑스러운 역군이었고 국가 유공자일세 2남 2녀 다복한 가정 축하하고 자녀까지 아버지를 따라 공학도의 길을 가고 있다니 부럽기도 하다네. 자네는 학창시절부터 만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추진력에 큰일을 할 것이라 예견하고 있었던 터라 자네의 성공담을 함께 기뻐하고 화공 8기생의 영광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네
병자생 쥐띠 내가 연배가 아니고 우린 갑장일세! 나는 1남 2녀를 두고 있었지만, 아들놈을 교고 졸업을 몇 개월 남겨두고 수영하다 사고로 먼저 가버려 한참 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한 일도 있었다네.
4.19당시 성동경찰서 접수하고 치안을 담당했던 기억 어제일 같이 되살아나기도 하네
이제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으니 세월비여시(世月飛如矢) 라는 고사성어가 실감 나게 하는구려 한해 잘 마무리하고 또 한해의 낙조를 아름답게. 꾸며보기로 하세 잘 잊게 자네는 나에게 참 좋은 벗이었네
미국에서 김병희 올림
'아 나의 조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재인의 과대망상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0) | 2018.08.16 |
---|---|
김정은, 트럼프 녹다운시키 제안 (0) | 2018.06.16 |
해외 교포는 동포인가 외국인 인가 (0) | 2018.04.03 |
집단최면에 걸린 대한민국의 살길 (0) | 2017.09.23 |
문재인의 헛소리와 북 타격 D-Day는 언제 (0) | 2017.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