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조국

70세 이상 노인들의 분노와 박정희

benny kim 2015. 11. 24. 13:30

70세 이상 노인의 분노와 박정희

지금 70~세 이상 노인들은 가슴을 치고 분노하고 있다

이분들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해방 이후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처 전쟁의 폐허에서 초근목피하면서도 60 70 80년대 피눈물 나게 고생고생하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산업전사였다. 대부분 은퇴하여 힘없는 노인들이지만 좌파정권 10년 동안 나라가 쑥밭으로 변하고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지 직전 지팡이에 의지하고 투표장에 나타나 나라를 지킨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누가 이분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이 나라가 있기까지 눈으로 보고 듣고 직접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있었던 산증인들이신 분이신데 이토록 처참하게 매도하고 짓밟아도 된단 말인가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겪어보지 않는 철부지 너희가 어찌 국가와 나라가 베풀어 주고 있는 고마움을 알겠는가.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들의 부모세대가 겪었던 그 수모와 억울함을 똑똑히 보아 오며 자랐다 일본의 수탈을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죽도록 일을 해서 추수가 끝나게 되면 공출이란 면목으로 수확의 64% 이상을 수탈해 갖다 그래도 모자라 실적 미비란 핑계로 수색대가 들이닥쳐 장독대로 부엌이고 심지어 헛간의 땅속까지 뒤지어 곡식이란 곡식은 발각되는 대로 싹쓸이 해서 약탈해 갔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을 치고 살아야 했다. 그뿐인가? 2차대전이 한참일 때 총알을 만든답시고 부엌의 놋그릇 숟가락 젓가락 까지 모두 약탈 했고 심지어 군용방한모 만든다면서 키우던 개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갔지만 끽소리 한마디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것이 나라 없는 서러움 이였단 말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역사를 배우면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상해 임지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자금을 모금했던 하와이 이민 일 세대 사탕수수 노무자들의 애국심에 감격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 애족했던 흥사단의 우국충정과 정신에 감격하기도 했다

우리가 나라를 되찾고 일본어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애국 애족 자긍심을 갖고 일본에 절대 기죽지 않고 살아가게 해준 것은 당시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덕분이었다 비록 일본의 종노릇을 해왔지만 거대한 공룡 중국도 하지 못했던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자부심을 가졌고 당시에 전화가 있나 전보가 있나 그러함에도 1919년 기미년 31일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봉화가 올라가고 대한 독립 만세를 일제히 부르며 거리로 뒤차 나온 우리 민족의 혼에 일본 군경의 혼백을 빼 버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삼일 운동사와 유관순 누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에 기죽지 않은 대한의 혼을 집어넣어 주었다

70세 이상 육신은 비록 이빨 빠진 사자 꼴이지만 가슴에는 아직도 뜨거운 대한의 혼이 살이 숨 쉬고 있기 때문에 조국과 나라 사랑하는 우국충정은 누구도 따라올 수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국가의 마지막 남음 보루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당시의 산 증인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계시는데 학교에서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조작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나 대표적인 몇 가지만 열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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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차산 언덕에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이 있다

이 호텔은 한국전에 부자가 함께 참전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는 명언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한

6·25 전쟁영웅 미 육군 중장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은 `전쟁영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당시 대위였던 외아들 샘 워커 Sam Sims Walker 역시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에 성공하여 마지막 누란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역전의 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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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1951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공원(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이 있다

이곳에는 당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 11,000여 명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한국전 17개국(의료지원 포함) 전사자는 미군 36,516명을 포함 40,896명이었다

*2010531일 미국 현충일에 이곳 미국 빅토밸리 지역 미 재향군인회 주최 한국전 참전 60주년 특별추도식이 있었습니다. 이 추도식에는

생존해 있는 40여 명의 미국인 한국전 참전 용사님과 그 가족들 그리고 한국 동포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한국인을 대표해서 한국전에서 전사한 영령에 바치는 추도사 중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고 36,000여 명의 미 병사와 155,000여 명의 유엔군 부상자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We know that this freedom was not free. It came only after 36,000 death of American soldiers and 155,000 injured UN soldiers.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미군 유엔군의 희생에 얻어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통령을 그년이라 욕을 하고 백주대로에서 수만 명이 모여 공권력에 대항 폭력적인 시위를 할 수 있는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고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그런 자유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정말 얼마나 알고 있느냐 말이다. 이분들이 희생으로 주어진 자유는 그런 자유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하고 그분들의 희생을 욕되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세계 지도상에서 한 점에 불과한 생소한 나라의 자유를 지켜 주기 위해 16개국 젊은 생명을 바친 대가가 겨우 이것이었단 말인가

오늘날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해준 바탕이 바로 이분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도 부족해서 배은망덕하게 우리의 주적은 미국이라 가르치면서 세계에서 마지막 남을 독재 세습 속에서 민중을 굶겨 죽여가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천하의 독재 정권을 미화 찬양하는 역사를 가르치고 있어야 하느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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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김현희 만들기 주역들

198711KAL 858기 피격사건으로 탑승자 115명 전원이 숨지고 폭파범 김현희는 체포되었다. 북한은 당시 한국의 1988년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이런 끔찍한 테러를 저질렀고 미국은 즉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았다

폭파범 김현희는 조사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실토하고 사상전향을 했고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북한 테러의 유일한 증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김현희는 특별사면을 받고 당시 국정원 조사관과 결혼까지 해서 테러로 인한 희생자 가족들에 속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갑자기 김현희는 가짜다. 가짜 만들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게 된다

그럼 노무현 정부에서 왜 김현희 가짜 만들기에 나선 것일까

당시 노무현 좌파 정부에서는 미국 측에 북한 테려지원국 지정 해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증인 김현희가 살아 있는 한 이런 요구를 받아 들릴 리가 없다. 그러나 김현희로 하여금 나는 가짜였다는 고백만 받아내게 되면 김정일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고 테러지원국 해제도 성사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누가 가짜 만들기의 몸통일까

첫째 이런 중대한 일을 국정원 단독으로 결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배후는 보나 마나 노무현 정권이었고 비서실장은 문재인이였다

두 번 제 MBC PD 수첩을 비롯한 SBS KBS 언론 방송

세 번째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공동 음모이었다

국정원이 김 씨에게 PD수첩 출연을 종용했지만, 김현희 씨는 응하지 않았다

좌파정권이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훤히 알고 있는 김씨가 가짜조작을 위한 음모라는 사실을 몰랐겠는가. 생방송도 아닌 PD 수첩에 나갔다가는 얼굴만 띄워 놓고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가짜 만들려는 수작이라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김현희 방송출연 거부로 인해

국정원은 이 계획을 포기하고 김현희를 추방하려는 수작을 부린다.

김현희 씨는 "2003년 국정원으로부터 이민 권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남편 정 모 씨는 월간조선(20092월호) 인터뷰에서도 "2003년 여름 잘 아는 국정원 간부가 오더니 내부가 시끄러운데 이민을 가줄 수 없느냐는 권고 아닌 경고를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만이 김 씨를 압박한 것이 아니다. 김 씨는 200310월 담당 경찰 간부로부터 타 지역에 거주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이 역시 상부의 지시 없이는 있기 힘든 일이다. 당시 경찰 총수는 최기문 경찰청장이었다.

이때가 2003년 여름에서 10월까지이다. 이도 저도 성사되지 않자 그해 11월부터 소의 정의구현 자제단과 언론 방송이 합작해서 김현희 가짜소동을 벌이기 시작하며 압박을 가했지만 김씨는 굴복하지 않았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은 200311"1987KAL기 폭파 사건은 조작된 것이고 정부가 폭파범이라고 한 김현희는 가짜"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MBC가 선두에 서고 SBS, KBS가 뒤를 따르며 캠페인을 벌이듯 '김현희 가짜 만들기' 프로를 쏟아냈다.

TV들은 북한의 살해 위협에 쫓겨 온 김 씨의 집을 공개하는 것은 북한 암살 조에게 김 씨 아파트로 가보라고 인도해 주는 행위까지 했다. 결국 김 씨 가족은 한밤중에 어린아이를 업고 피신해 5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도는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 정권이 바뀌고 난 후에야 이 엄청난 음모가 밝혀진 것이다

김현희는 2012618~19TV조선 '·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에 대한 탄압 실상을 폭로하고, 새누리당이 진상조사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김현희 죽이기' 의혹을 보도했다.

김씨는 노무현 정부가 해외로 추방하고 못 들어오게 한 뒤 가짜라서 도망갔다고 하려 했다이민을 거부하고 방송 출연까지 거부하니까 이제 MBC등 방송을 통해서 가짜소동을 벌이며 1급 보안사항인 살던 집을 방송에 노출시켰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북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미얀마 아웅 산 묘소에 폭탄을 설치해 우리 정부 요인들을 폭삭했고 북한을 탈출한 김정일 전처(前妻)의 조카 이한영 씨를 추적해 대한민국 땅에서 살해했다. 그리고 대한항공기를 폭파해서 115명의 탑승객을 몰살시킨 천인공노할 테려국을 보호 하기위에 북한 테러의 역사를 조작하고 가짜 김현희를 만들어 내려까지 한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도 당시 청와대 국정원 정희구 현 사제단 언론 방송 어디에서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 지금 이런자들이 앞장서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악을 쓰며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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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냈다. 이분들을 지하 1,000M 섭씨 34도를 오르내리는 열악한 환경 속 막장에서 석탄을 캐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간호사들은 시체병동에서 사체를 닦아내는 일을 했다 그 후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이분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기 위해 서독을 방문했다. 아무런 지급보증도 없는 마당에 말이 차관이지 이건 자존심도 내팽개친 구걸 이였다

500여 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는 실내에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들의 울먹임이 하도 심하여 동해 물과 백두산이. 하며 이어지는 애국가의 가사는 들리지 않았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하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박정희 대통령의 떨리는 목소리의 연설은 끝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공회당은 눈물바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만원 시스탤 클럽>

이렇게 피눈물 나는 돈으로 경부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한국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한 종잣돈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함에도 전교조 선생이란 작자들은 오늘날 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이야기는 삼류 소설에 불과하다고 평하하고 있는 말을 믿고 반정부에 동참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70세 이상의 노인이 되어 살아 계시는 광부 간호사님들의 분노는 오죽하겠는가를 상상 해 보았는가? 이 철없는 대한의 젊은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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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19662월 동남아 순방의 일정으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필리핀을 가려 했지만,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며 방문 불가라 거절을 당했고 말레이시아는 박 대통령 방문을 받아 주었다

말레이시아 역시 필리핀 만큼 잘사는 부유한 나라였다.

1966년 당시 1인당 GNP가 필리핀은 269달러로 동남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와 함께 선두 그룹에 들어 있었지만, 한국은 반도 미치지 못하는 130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해 10월 월남참전 7개국 정상회담은 회담 참석차 필리핀 방문해 숙소인 마닐라 호텔에 도착 했지만 박대통령에게 배정된 방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 월남, 태국 등 각국 정상들과는 달리 다른 나라 보좌진들에게 배정된 방보다 작은 방을 배정해서 노골적인 푸대접과 수모를 주어 박 대통령의 입술을 깨물게 하였다

오냐, 두고 봐라 반드시 너희보다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말 것이라는 결심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왔다

그 후 자원도 기술도 없는 후진국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대한민국이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자기 나라와 경제력에서 대역전이 무섭게 벌어지는 것을 보고 말레이시아의 마하트르는 그동안 서구 선진국을 모방하던 정책을 버리고 한국이 새마을운동을 거울로 삼아 소위 동방정책 (Look east policy) 추구하면서 산업연수생을 한국에 보내 새마을 운동을 접목하는데 주력한 결과 그나마 오늘날 동남아에서 4마리의 용을 뒤이어 선두 주자가 된 것이다

19838월 한국을 방문한 마하티르 총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분명하게 이루어냈고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것 자체가 뛰어난 업적입니다. 그는 한국을 위해 큰일을 했습니다. 한국민들은 그가 현대한국의 진정한 국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경제 199733)

단언컨대 한국이 처음부터 민주화가 됐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겁니다.” (조선일보 2000327)

경제 분야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불행을 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을 벌써 일본을 넘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산업현장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는 노동운동과 우리 젊은이의 혼을 빼 버리고 있는 전교조라는 악당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밀레이지아지아의 동방정책 성공에 반해 박 대통령 일행에게 수모를 준 필리핀은 어떠했는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은 표본삼아 성장한 말에이지아를 보면서 박정희 푸대접을 뒤늦게 후회하고 대한민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똑같을 말로 거절하고 말았다

이후 박정희 18년 집권으로 세계 12위의 경대 대국으로 성장하는 기적을 가져왔지만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똑같이 20년 장기 집권을 하고서도 오늘날까지 아래의 수치로 보는 바와 같이 일 인당 국민소득에서 한국의 1/10수준에 지나지 않는 후진국으로 그대로 처져 버린 것은 말레이시아처럼 한국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54월 기준 일 인당 국민소득

말레이시아 10,600

필리핀 3,000

한국 2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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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수 세기 동안 잠자고 있었던 중국이란 사자의 잠을 깨워준 사람 역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나라 전쟁의 잿더미에서 거대한 일본을 잡아먹을 기세로 성장하고 있고 미국언론에서는 한국이 몰려 오고 있다고 대서 특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등소평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다 공산주의로는 안된다. 검은 고양이던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소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들고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한국의 새마을 운동 한국의 경제 성장을 모델로 삼아 오늘의 중국을 만든 것이다

등소평은 박정희 경제모델 그대로 모방중국어로 번역된 폐허 딛고 도약 기적 이끈 인물박정희 정기는 중국 공산당과 정치국원 간부 필수 연수 교재로 활용했고 모든 간부에게 필독서가 된 것이다

*필자에게는 손자뻘 밖에 되지 않는 젊은이들! 이 사람은 여러분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결코, 열러 분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자네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여러분들의 미래를 향한 프라시보(placebo)적 건전한

정신과 혼을 빼 버리고 만사 노시보(Nocebo)적 사고로 비틀어 병들게 하여 개인 사회 국가 모두를 망치게 하려는 정치권 특히 전교조 등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 작자들에 대한 분노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여러분들의 잃어버린 정신을 되찾아 주고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자 함이다

며칠 전에는 Facebook 필자의 조카 방에서 돌쇠라는 분이 올린 어느 여대생의 고백 이제야 알 것 같다” http://cafe.naver.com/grace0406/64478 라는제목의 귀한 글을 접하고 이곳에 간략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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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대 여대생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기에

"한국의 경제발전"이라는 말은 가슴에 다가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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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국은 이 정도로 잘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생님 세대 분들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보다 못 살았던

세계 최저의 거지 국가였다는 사실을 전혀 가르쳐 주지 않고 그런 말을 부모님 세대에게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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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발전을 옹호하는 교수님을 수구꼴통 교수라며 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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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사들의 끈질긴 20여 년 악선전에 젖어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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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깊이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의 기적 같은 경제발전을 알게 되고

"대단한 경제발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구나" 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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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5.16 혁명 당시,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가나보다 못살았던 세계 100등 최빈국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60년대 국민소득이,

한국 70달러, 북한 100달러 필립핀 200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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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야 우리 부모 세대들은 "보수꼴통"이 아니라 세계 역사상 가장 급격한,

기적 같은 발전을 일으킨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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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촌스럽다고 무시했던 "새마을 운동"은 후진국들의 성공적 발전모델로 인식되어 이라크, 몽골, 콩고 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도 한국에 새마을 운동 사절단을 보내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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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3년 전쟁 치른 국가에서 20년 만에 세계 제1의 제철소, 자동차 제조국,

세계 제1 전자 산업국, 세계 제1 선박 조선을 하는 중공업, 첨단 산업 위주로 바뀌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경제사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불릴만하다."

인제야 알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한국의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외국에서는 얼마나 대단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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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대통령께, 철없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미친 듯이

욕하며 저주했던 저의 무식함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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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사회로 나와 아무리 어려운 역경에 부닥친 다 해도 스스로 이를 악물고 나는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포라시보적 사고를 갖고 첫발을 내 딧는 순간 당신은 벌써 반은 성공하고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권력이나 부모의 경제적 지원으로 시작된 사업이라 하더라도

이건 안 되는 거라는 노시보적 사고를 가진 한 백 보를 간다 해도 결코 성공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의 선택은 오직 여러분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