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야기

빅토밸리 한인회 그 22년을 돌아본다.

benny kim 2014. 12. 21. 22:21

빅토밸리 한인회 초기 역사와 디딤돌 -김병희-

 

1992년 한인회 발족 이전의 한인 커뮤니티의 뿌리는 1980년대 바스토 해병대 물류기지창과 바스토와 랭켓스트 중간지역에 위치한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군인가족으로 국제결혼 한 한국 분들을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분들이 모임을 시작한 것은 한인 목사님이 바스토에 오셔서 주일 예배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이분들이 후에 빅토밸리 중앙교회가 창립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바스토에서 모이고 있었던 분들이 중앙교회 창립에 합류하게 된 것은 빅토밸리 지역에는 한국인 의사가족들이 많이 와서 개업했고 이 지역에 턱없이 부족한 의사를 카운티에서 정책적으로 초빙한 의사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 지역에 소아과 의사가 한 분도 없어 방석준 박사를 초빙하여 1984년도에 소아과를 개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이외 1980년대 초에서부터 개업한 한국인 의사 분들로는 Dr·등화기 치과, Dr·권영조, Dr 조한원 이비인후과, Dr·이정구 이비인후과, Dr·이덕성 마취과, Dr·이준식 산부인과, Dr·신우철 치과, 등이었는데 이분들 가족과 바스토 한인 가족으로는 윤정순 가족을 비롯하여 여신도가 합류하여 중앙교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이때 중앙교회 창립에 헌신적으로 활동하신 분들은 Dr. 권영조, Dr·등화기. Dr·이정구, Dr·방석준, 가족과 이정난, 정서 엘, 야뇨, 리안희 잔손, 송민희, 윤정순 이종무 등이었는데 창립 당시 성도들의 수는 30~40명 정도였고 1983911일 종파를 초월한 개신교 Korean Community Church로 등록하였다 (이상 Dr 방 석준 박사의 증언)

 

이후 1980년대 후반기에서부터 신흥도시에 대한 미래의 비전과 부동산 열기를 타고 많은 한인이 유입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인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드디어 1992726일 홀리데이 인에서 빅토밸리 지역 한인회 창립총회가 개최되고 정관에 의하여 재미 빅토밸리 바스토 지역 한인회 (Victorvalley-Barstow Korean American Association)” 라는 이름으로 출발하게 되었는데

 

후에 정관이 개정되면서 빌토밸리 한인회 Victorvalley Korean American Association)로 개칭되었다

 

초대회장으로 방석준 박사를 선출한 후 2014년 현재 12대 김 스태파노 회장에 이르기까지 22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 우리 한인 사회를 이끌어 오던 분들도 22년이란 세월과 함께 이생을 하직하신 분들도 많고 대부분 은퇴 하시고 한인회의 일선에서 물러나다 보니 그분들이 이룩한 희생과 봉사에 대한 공과도 잊혀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한다. 그러나 먼 훗날 이 지역 우리 후손들에게 빅토밸리 한인사회가 뿌리내리기까지 희생하신 선배들의 업적을 어떤 형태로든지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는 초창기 어른들의 의견에 따라 부족 한데로 PHELAN VICTOR VALLEY 지 김한수사장의 협조를 받아 그 줄거리를 담아 놓고자 한다.

 

우선 한인회 발족 후 오늘까지 많은 분이 봉사하는 동안 미국의 서브 프라임 파동 이후 어려운 고비도 많았고 그래도 명맥을 이어 오고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하면서 한인사회의 중심을 지켜나가겠다는 지도자들의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분들 모두를 소개하고 싶기는 하지만 지면 관계로 70~80대 대부분 은퇴하시거나 돌아가신 분들을 중심으로 초창기 한인지도자 1세대에 관해서만 기술하고 실명을 남겨 놓는다.

 

초대 방석준 회장에서부터 제9대 배기찬 회장(1992~2008)까지를 제1세대로 나름대로 정한 것은 제9대까지의 회장 임원들 대부분이 더 이상 한인회 임원 이사로 참여하지 않고 은퇴 혀였기 때문이다.

 

9(2008) 이후에 대한 역사는 앞으로 또 한 세대가 끝나갈 즈음 그동안 봉사하신 분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 한인회의 토대를 세운 것은 방석준 1~2(연임) 회장님을 중심으로 한 임원 이사님들이시다

 

부회장 최윤식 총무 단김 회계 최정수 1~2대 이사에

김대목 김성수 김태웅 권영조 김병희 김갑연 김경숙 중화기 배기찬 서정관 송민희 손찬규 미미송 이청자 이건영 이준식 이호영 이효천 임영호 이성희 주문수 조환원 조성호 홍영환 임이신데 이중 이효천 김대목 임은 이미 우리 한인회 발족의 디딤돌 위에 큰 발자취를 남겨놓고 소천 하셨으니 이분들의 명복을 빈다.

김성수 제3대에서 특기할 사항은 당시 김동수 이사님이 주축이 되어 하이데저트 지역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건립이 추진되었고 LA 총영사관을 통해서 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후원금까지 보내오긴 했지만, 건립 장소 빅토빌 시의 건립 허가 등의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기가 끝나 결국 기념비 건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본국에서 보내온 후원금까지 훗날 돌려보내야 헸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였다 두 번째로 김성광 부회장이 주축이 되어 김해 시와 빅토빌시 간의 자매결연 역시 상당히 진척되고 있었던 것인데 회장단의 의견 차이로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한국전 참전 용사님 들의 명단을 다수 수집하게 되었고 이분들을 위한 특별 행사를 하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 놓은 것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고하셨던 김동수 김성관 이분들 역시 모두 소천하셨으니 우리 동포들의 기억 속에나마 새겨 놓아야 할 분들이시다

 

3대 방석준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로 봉사하신 분들은 권용조, 김동수, 김대묵, 김병희, 김태웅, 손찬균, 송미미, 이건영, 이성희, 이준식, 이청자, 이호영, 임영호, 주문수, 조성호, 조환원, 홍용환

 

4대 박근우 회장님은 유감스럽게도 이사님의 협조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빅토밸리 한인회를 위해 동분서주 혼자 다니시며 대외적으로 이곳 한인회를 알리는 홍보 역을 다하셨다

이사로는 김갑연, 김병희, 방석준, 배기찬, 손민희, 손찬균, 송미미, 이성희, 이청자, 이호영, 임영호, 홍용환. 이사장에 김성수

 

이런 와중에 제5대 조한원 회장님이 취임하였고 제4대 회장님이 이사회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고군분투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잘못된 정관 때문(전직회장님이 자동으로 이사장이 되게 한 것)이고 이사장과 화장과의 뜻이 맞지 않으면 양 바퀴가 따로 돌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제일 먼저 이 부분 정관을 개정하고 김병희 이사장을 비롯해서 막강한 이사진 등화기 이중식 이덕성 전승훈 권영조 노동현 이건영 손민희 미미송을 구축해서 다시 활기찬 한인회를 이어가게 한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부분이다

 

대표적인 사업으로 199961일 자 한빛 한인 회지창간호를 발행한 것이다 발행인 조한원 편집인 김병희 홍용한 발행처 빅토빌 바스토 한인회 로 격월간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빛 회지에서 가장 특기할 기록은 20056월 제호 12호에 실린 한인회 연혁이다 1992년 한인회 창립이후 13년간의 실종된 역사를 복원한 것이다 초대 회장에서부터 모든 역사기록이 없다는 것을 안 김병희 편집인이 한인회 창립이후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던 공문과 기록들을 근거로 해서 한인회 연혁을 복원한 것이다

이후 신우철 6대 미미송 제7대 회장님은 임원 이사 모두 사심 없는 봉사를 통해서 연례행사로 여름 캠프 가을 추석잔치를 통해 동포들의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이어왔다 이 기간 봉사하신 임원 이사 분들은 다음과 같다 이사장에 김병희 이사에

이건영 이문희 이청자 전승훈 이원식 홍용일 김병희 김형근 노동형

등화기 박건우 유영식 방석준 이준식 이희영 조한원 송민희 김영 성은경 임옥정 주재근 최양자 박혜광

이어 2005~2006년 제8대 정병호 회장으로 이어 지면서 빅토밸리 한인회창립 이후 가장 활기찬 행사를 통해 한인사회가 주류 사회에 크게 알려지고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이곳을 비롯한 미 전역에 부동산 열기가 불어 닥쳐 호경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병호 회장 배기찬 이사장이 의욕적인 행사를 계획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행사를 계획 한다 하더라도 예산이 뒷밭침해 주지 못한다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제8대 이사회는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된 사례라 하겠다. 모든 이사님은 1,000불이 넘는 연회비를 자진해 희생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상공인 역시 한인회의 의욕적인 사업을 위해 찬조금이 답지하기도 했다

 

20051219일 미 상하 합동회의에서는 매년 113일을 한국의 날로 선포한 법이 통과되고 이를 대통령이 서명 선포한 것인데 빅토밸리 한인회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초로 한인의 날 선포를 기념하는 한국문화행사를 하였다

2006120High desert Church에서 빅토밸리 한인회에서 주최한 한국의 날 제정 축하 한국문화의 축제는 윤병욱 동포재단 총회장, 이윤복 LA 총영사 여러 지역 한인회장 단체장, 시장님들 카운티 슈퍼바이져,10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님 등 1,500여 명이 참석 한가운데 성대한 축하 모임이었고 이 지방 미국신문에서도 일면 머리기사로 보도되었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는 한국의 날 제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윤병욱 한국 동포재단 총회장님께서 미국의회 의 한국의 날 제정 서언문과 부시 대통령의 한국의 날 선포에 대한 승인 지지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고 선언문패가

LA 뉴뇩 한인회가 아닌 빅토빌 한인회에 전달되었다는 것은 특기 할 사항 이였다

이어 미국 샌버나디노 카운티 슈퍼 바이져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카운티 한국의 날 제정을 승인하는 선언문을 이날 정병호 한인회장에게 전달되었고 빅토빌, 아댈란토 시의회의 한국의 날 제정 승인서도 수여되었다

특히 윤병욱 총회장님과 총영사님의 축하 말씀에서 이런 시골 작은 도시의 한인회에서 과거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큰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에 특별히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 대회를 위해 직접 참석하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내 해주신 대표적인 분들은 Mike Rothschild 빅토밸리 시장, James Nehmens 아델란토시장 카운티 수퍼바이저 등 미 주류 사회의 언론 경찰 지도급 인사 다수 한국인으로는 이윤복 LA 총영사, 윤병국 동포재단 총회장, 최영호 라디오 코리아 사장, 조광세 미주한인회 총련 서남부 연합회장, 이용태 LA 한인회 회장 안영대 오랜지 카운티 한인회장 인랜드 한인회 회장, 박천수 임페리얼 카운티 한인회장, 김승욱 동부노인회장, 홍응식 동부한인회 회장 등 다수였고

대회를 준비한 분들은 대회장 정병호 준비위원장 배기찬 이사장 원식이 볼만 수석부회장 손민희 부회장 김병희 홍보분과 위원장 성운경 섭외 분과 위원장 성그래이스 총무를 비롯한 전직회장으로 방석준 조한원 싱우철 미미송 이였고 이사로는 김정하 재이김 이성희 유영식 최오규 김병희 한만선 이문희 안주옥 남석훈 이외 이 지역 유지 상공인 다수가 찬조하고 협력하신 분만 100여 명 이상이 참여한 결과였다 특히 이 행사를 통해 미주류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여 우리 한인 사회가 이 지역에서 크게 알려지는 게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8대 한인회에서 두 번째로 큰일을 한 것은 월간 한인뉴스 지의 발간이었다. 이사회에서 회지 말간을 위해서 6개 월 이상 준비기간이 있었고 200511월에 첫 창간호가 발행된 것이다

이 한인뉴스지 발간을 위한 비용으로 대부분의 이사님이 매월 전면광고 ($500)를 사는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들게 창간한 월간 한인회지는 16개월 만에 분실되고 말았다

-한인회지 HANINNEWS 분실과 한빛 한인회지 속간하게 된 사연을 간략하면

200511월호부터 HANINNEWS를 발행하면서 발행처 빅토밸리 한인회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편집 제본업자를 선정 계약 하고 광고스폰셔는 한인회에서 적극 협조 한다는 조건으로 발행하게 된 것인되 제9대 한인회 배기찬 회장의 임기가 시작되고 20075월호 부터는 제호 중 N자가 M으로 바뀐 HANINNEWS가 아닌 HANMINEWS로 되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빅토밸리 한인회는 발행처가 아닌 협조 처로 나와 있어 한인회지는 한인회도 모르는 사이 없어져 버렸다

이 사실을 먼저 발견한 김송차 감사께서 이사회 보고가 있었고 HANMINEWS 지에 시정을 촉구 했지만 시정되지 않아 이에 대한 대책이 김한수 부이사장 댁에서 있었던 2007517일 제5차 이사회에서 논의가 있었는데 소송을 해서라도 한인회 재산 목록 제1호인 회지를 찾아와야 한다는 의견과 한인회의 고질적인 소송 건으로 동포들의 지탄을 밭은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동안 정간돼 있었던 한빛 한인 회지를 속간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따라 조한원 회장 당시 창간했던 한빛 한인회지를 제호 제13호로 다시 속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한빛 통권17호 참조)

그러나 그동안 한인회에서 힘들게 모신 광고주들을 대부분 잃어버린 데다 2008년에 발생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불어 닥치면서 경기후퇴와 함께 광고 스픈셔가 줄어들다 보니 발행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한빛 한인회지도 20095월호를 마지막으로 정간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가 얼어붙은 마당에 그나마 한빛을 이어져 온 것은 배기찬 회장 과 편집 제작을 맡은 김경동 민은경 씨의 헌신이 있었고 이사분들의 재정적 희생이 뒤 따랐기 때문이었다.

이외 제9대 한인회에서 이룩한 업적이라면 우리의 전통문화인 어른을 공경하고 효사상을 후세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중앙교회를 비롯한 목사회의 후원으로 효도관광을 비롯해서 매년 5월 가정의 달에 맞추어 경로잔치를 오늘날까지 연중행사로 하게 한 것과 그동안 중단되었던 한국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님들에 대한 보은의 위로잔치를 이어 온 것이다

특히 2007815일 참전용사 보은의 위로 잔치를 위해 김송차 감사님을 한국으로 파견하여 한국 보훈처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한국전 참전용사님들에게 한국정부에서 수여하는 평화의 사도 증서와 매달 수여식을 하면서 참전용사들을 감격케 하기도 하였다

2008년도 행사로 105일 배기찬 회장을 비롯한 지도자 들이 미 재향군인회관에 직접 방문해서 한국전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 그리고 한국전 당시 우리를 도와준 미국 시민에게 감사한다는 패를 전달했고 미 주류 신문Mountaineer Progress 지에도 톱기사로 보도가 나갔다

20081010일 재향군인회에서는 이에 대한 답례로 한인회 지도자들을(배기찬, 방석준, 단김, 김병희, 김경동)위한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배기찬 9대 회장은 지난 행사에서 누락 되였던 한국전 참전용사 두 분에게 평화의 사도 증서 및 훈장을 수여했는데 이 두 분은 후에 증서와 메달을 표구된 액자에 담아 재향군인회회관에 영구 보존 전시 할 수 있게 기증했고 한인회 지도자가 초청된 가운데 2009130일 평화의 사도 증서와 훈장 증여식이 있었다.

9대 한인회의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업적은 이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주한인분재협회 활성화를 위한 후원자로서 지원한 것이다 사실 분재문화의 효시는 4세기경 고구려 무용총벽화에 분재 벽화가 증명하듯 한국이 분재문화의 원조이고 효시인데도 미국에 한국분재문화가 전래된 것은 1989년 가든그로브에서 김스분재원이 개업하면서 부터이고(중앙일보1991618일 저면기사) 이곳 필렌에서 1993년 한미 분재협회가 창립되고 빌토밸리 한인회의 후원으로 한인분재인 400여명을 배출하여 199776~7일 까지 미국 최초로 LA 갤러리아 전시관에서 제일회 한국분재 전시회을 개최하는등(중앙일보 LA199776일자보도) 빅토밸리 한인회가 미주 한인분재 협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그 외 어려운 중에도 많은 행사를 계획하고 실천하게 한 것은 손민희 이사장을 비롯하여 전 이사님들이 매월 모여 힘을 보탠 열성 때문 이였다 더욱이 배기찬 회장님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한인회 노인분과 위원회를 분리해서 이 지역 노인회를 발기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2년간의 명단을 준비한 끝에 2007717일 제4차 경로행사 모임에서 가칭 하이데저트 노인회를 발기하기로 결의하고 발기위원으로는 이호천 천종철 류현수 방석준 송일면 김윤중 김병희 를 위촉하고 승인을 받아 그 결실을 본 것은 2007911 일 김한수 부이사장의 댁에서 있었던 경로 잔치 모임에서 빅토밸리 상공회의소 창립(소장에 김한수) 겸 하이데져트 노인회 창립총회에서 정관이 통과되고 초대 회장에 방석준, 수석부회장에 김윤중씨를 선출했고 제9대 회장의 임기 중 노인회를 조직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업적은 높이 평가 할 일이다

1992726일 한인회가 창립된 이후 2008년 제9대 까지 여러분들의 희생과 봉사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한인회를 떠나지 않고 몸담아온 역사의 산증인이라면 방석준 배기찬 손민희 김병희이고 특히 오늘까지 한인회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단체는 하이데저트 중앙교회를 필두로 목사회 목사님들이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고자 한다

: 훗날 제2세대가 일선에서 물러 날쯤에 제10대 한인회부터 다시 한인 역사가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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