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비망록

I love 할아버지

benny kim 2010. 8. 26. 11:08

-추억의 타임 열차를 타고-


지금은 자정이 되어가는 한밤중인데

 

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깨었다

 

이 밤중에 찾아온 사람은 없을 테고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밤바람이 향나무의 향긋한 향내를

 

풍기며 품에 안긴다.

 

아 오늘이 보름이던가. 휘 황 찬 달빛이

 

너무 고아 이놈 견공 님이 달님을 보고

 

짖어 댄 모양인가

 

주인이 나왔다고 안심이던가.

 

견공의 소리가 뚝 그치고 나니

 

그제야 온갖 풀 벌레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게 얼마 만인가

 

 

 

귀뚜라미 소리 같기도 하고 베짱이의 합창 같기도 하고

 

좌우지간 이름 모를 풀 벌레의 합창에 매료되어

 

바깥 나무 의자에 주저앉아

 

하늘 달님을 쳐다보고 잇노라니

 

갑자기 타임머신 열차가 나를 태우고 지나온 길로 달려간다.

 

처음 멈춰 선 역이 내가 얼릴 적 내가 살던 초가집

 

마당에 모기향 대신 왕겨 불 피워놓고

 

벌렁 누어 하늘을 쳐다보는 그런 간이 역이었다

 

달은 그때 그달이지만 풀 벌레 소리는 좀 다른 것 같구나

 

그래도 그 침상에는 어머님 할머님이 계셨고

 

이웃에 사시던 고모님이랑 도란도란 나누시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도 했고

 

귀뚜라미 소리 추억의 나래를 펴게 해주었다

 

 

 

잠시 눈을 감아보니 타임머신 열차는 다시 어디론가

 

달리다 멈춰 선 곳이 맥아더 동상이 서 있는 인천 만국 공원 (현 자유공원) 이였다

 

아 참 시간이 너무 아쉽던 때였었지

 

인천 부평 미군 부대에 카투사로 근무하던 때였었지

 

첫사랑 연인과 함께 토요일이면 외출 나가 만국공원 거닐며 데이트하던

 

그 아람다운 시간 행복했던 시간 밤 12시 귀대 시간이 너무 빨리 가던

 

그때도 저런 풀 벌레 소리를 함께 들으며 두 손 잡고 황홀해했었지

 

제대 몇 개월을 남겨놓고 날 버리고 시집을 가버린 첫사랑의 아픔이

 

저 풀 벌레 소리를 타고 아련히 저려온다.

       

아서라, 이역도 더 머물 곳이 못 되는구나. 어서 떠나자

 

다음의 정착 역은 서울 외곽 도봉동 

 

당시만 해도 도봉동에는 논밭에 농사를 짓고 사는 곳이었고 시내버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시골이었지

 

군 복무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사업자금 빌려 이곳 방 하나 있는 창고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던 곳이었고 자가용 자전거 하나 사서

 

제품 만들어 싣고 손수 배달하면서도 명함에는 사장이란 직함이었던

 

때 밀가루 사서 밀 장국 끓여 먹으며 참 고생 많이 했지만

 

그래도 꿈이 있었고 여름밤 더위 식히려 마당에 놓인 침상에 누울 때도

 

앞뒤 사방이 밭이고 논이었던 그 들판에서도 이런 풀 벌레 소리로

 

위안을 받곤 했었지  

 

아련히 먼 옛 추억이구나

 

그래!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격려해주던 많은 친구가 있었고 고향에는 어머님이 계셨고 사랑하는 동생들

 

이 있었고 무엇보다 발명 특허를 받아 생산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주문이 밀려오는 밝은 미래가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 이 외진 적막한 사막 한복판에 아들딸 다 제 갈 길 보내 버리고

 

달랑 혼자 남아 밤하늘 밝은 달을 보면서 추억의 열차를 타고 가는

 

외로운 늙은 나그네의 자화상이 외롭기만 하다

 

누가 보아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 할는지 모르지만

 

어떠한 성공도 가정에서의 실패를 보상하지 못한다.”

 

대이비트 오 매케이 님의

 

말씀이 가슴에 곽 다가오는 그런 밤이었다.

 

다음날

 

이런 아빠 마음의 텔레파시가 전파를 타고 간 것인가? ESP!

 

한 달간 머물다간 딸아이가 전화를 해왔다

 

세 살짜리 손녀 아시아 가랑,

 

I love 할아버지! I love 할아버지!

 

그래, 아직 외로운 사람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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