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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6.25

benny kim 2005. 6. 25. 22:38

내가 그래도 좀일찍 자수 성가 한 편인데
별로 돈 아끼지 않고 쓰는 곳은 좌판 들고 다니면서 행상하는 고학생들이다

 

6.25가 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이친구는 이북이 고향인데
6.25전쟁중에 월남해서
고학으로 대학을 좋업한 (고대 법과)다정한 친구이다


그러나 참으로하느님도 무정하시지
이친구 친구들 졸업 축하 파티에서
못하는 술을 과음 하고 그날 밤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친구가 전쟁중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동생 이렇게

5식구가 피난 봇집 싸가지고 피난 대열에 동참 한것은
차가운 겨울이 였다한다 

 

38선 국경도 넘어 서울이 가까워 오고 있어 한숨을 돌리고 있던 참이 였는데
월북하던 북한 폐잔병의  가관 총 사격에
고만 부모님과 동생하나 잃어 버리고

5살아래 여동생 과 달랑 둘만 남게 되었단다


당시 이친구 (서청원) 나이는 15살 동생 나이 10살 

죽은 엄마 끊어 않고 울부 짖은 동생 억지로 때어서 봇짐싼 밧줄 빼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게 동생 몸과함깨 붇들어 매어가지고


부모님 동생 시신은 산더미 처럼 샇여 있는 피난민들의 시신속에 묻어 두고
얼어 퉁퉁부은 맨발을 끌며 굶고 지친몸 이끌고 천신 만고 끝에 부산 까지 내려 왔다 한다

 

피난길게 죽은 남정내 옷볏겨서 동생에게 입혀 남장을 하고
노숙을 해도 동생 다칠세라 사람들 피해 잠자리 구하기가 그리도 어렵더란다

 

말이 고생이지 이꼬마들의 고생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연고가 있나, 돈이 있나, 굶기를 밥먹듯 했으니 힘이나 있나
있다면야 오누이의 기막힌 사랑과 의지하는 정밖에 없었겠지

 

 그래도 이 남매가 살아남기 위해 시작 한 것이 들고 다니는 좌판 장사였다
 가방같은 좌판을 목에다 걸고 그속에 간단한 껌, 라이타, 초코랬, 손톱깍기, 등등  챙겨 다방 , 식당 , 요정  길거리를 해매며 팔고 다니는 것이엿다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학교 가고 이렇게 해서 고학을 했다
서군이 대학에 들어 가면서 동생도 서울로 왔다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오빠의 학비까지 마련 했지만 서군이 4학년이 되면서 

이 착한 동생은 오빠의 들록금 마련을위해 다니던 야간학교 까지 휴학을 했다

 

서군의 졸업식때 한아름 꽃다발 안겨 주던 동생 !!!


커다란 사각모를 동생머리에 쉬우고 눈물 글설그리면 끌어 않아 주던 서군 !!
두사람이 서로 포옹하고 눈물이 범벅이 된 그 장면  !!


이친구의 인생 역정을 아는 사람은 함깨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핏줄 이라고는 하늘아래 둘밖에 없은 저남매는 서로가 엄마요 아빠의 품이 였으리라


졸업축하 파티 에서 두사람에게" 서 정주 씨 국화옆에서" 시 한수 낭독하며 축하 를 해주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리웁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머어언 먼   젊음의  뒤안길 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나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아 그러나 이 시가 서군이 이세상  떠나는 마지막 노래가 될 줄이야 !

 

우리님들 슬피 운다는것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

 

이미 파랗게 변해 버린 얼굴 부벼 대면서

 

오빠 !!~~난 이제 어쩌라고 오빠!!!

 

오빠!~~ 날 혼자 두고 가버리면 난 어쩌라고 오빠야 !!

 

참아 두눈뜨고 볼수가 없는 슬픈 장면 이였습니다
슬픔도 예술이구나 !
세상에 이런 슬픔도 있구나 !

 

이런 논픽션을 보지 않고 슬피 운다는 것 말하지 말아요 !


6.25가 닥아오면 내귀에는 항상 서군의 동생 울음 소라가 쟁쟁 울린다
누가 저들에게 저런 슬픔을 주었던가 ?

 

당시 우리들도 갓 졸업한 처지라
천사같은 서군의 동생을 도와 주지 못했는데
좀여유가 생기니 좌판들고 다니는 야간 햑생들 보면 서군 남매 생각 이 나서 도와 주는것이 즐거워
어떤 때는 몽땅 사서 공장 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